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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Dec 22. 2022

한 번에 이를 4개나 뽑는다구요?

캐나다에서의 사랑니 발치와 수면마취


덴탈 하이진 (Dental Hygiene) 클리닉에서 스케일링을 선생님이 작업을 멈추며 제게 묻습니다.


"가끔 뜨거운 음료 마실 때 오른쪽 사랑니가 시리지 않던가요?"

"아니요, 별로 못 느꼈는데요."

"4개월  스케일링할 때는 없었는데 위, 아래 사랑니 두 개 모두 충치가 생겼어요."

"?"


며칠 뒤 치과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받았는데 역시 오른쪽 위, 아래 사랑니에 모두 충치가 생겼다는 같은 결과였습니다. 의사는 사랑니이고 급하게 뽑아야 할 상황은 아니라며 한 달쯤 뒤로 스케줄을 잡아 주었습니다.


20대 초반쯤 양쪽으로 위, 아래 사랑니 4개가 모두 자리를 잘 잡고 나왔는데 이민 오기  연골이 있는 삼겹살을 먹던 중 사랑니 하나가 부서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충치로 인해 안에서 썩은 상태인데 좀 딱딱한 뼈를 깨물다가 깨졌던 것 같습니다. 친척분이 치과병원을 하고 있어 검사를 받아보니 부서진 사랑니와 다른 3개도 모두 조금씩 충치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분의 강력한 권유로 뽑지 않고 4개의 사랑니를 모두 금으로 때우거나 씌워버리는 공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캐나다는 치과 진료비 엄청 비싸. 자네 내 말 듣고 그냥 다 하도록 ."


당시에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했지만 이민 와 살다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되고 베네핏이 적용되면서 치아검사나 스케일링을 위해 이곳의 치과병원을 방문하면  입안을 보고 의사들은 모두 한결같이 탄성을 지릅니다.


'Wow, it's awesome!'




제 자신이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예전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던 기억과 그때의 아픔(?)을 추억하면 그렇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음 주, 또 다음 주로 계속 스케줄을 연기하던 중 치과 의사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치과인데요 스케줄을 더 이상 연기하면 곤란합니다. 원하지 않으예약 취소해 버리겠습니다."

"! 아닙니다. 다음 주 약속한 날짜에 갈 겁니다. 그동안 회사일이 좀 바빠서 그랬습니다."


치과 진료실


결국 더 이상 연기를 못하고 치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를 뽑으려분명히 마취를  것 같은데 끝나고 운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와이프가 한국을 방문 이어서 운전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기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치과에 확인하니 다행히 마취를 해도 운전은 할 수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유는 저의 잦은 마취로 인한 내성으로 치과에서 마취가 쉽게 안 될 같았고 상태에서 이를 뽑으면 통증이 무척 심할 것 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한 번의 수술여러 번의 내시경 검사를 했었는데 모두 수면 마취를 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이프의 강력한(?) 요청으로 불임수 (vasectomy)을 받기로 결정하고 술 여부와 일정에 대하여 문의하기 위하여 비뇨기과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의사의 첫 번째 질문은 현재 자녀가 몇 명인지 그리고 제가 특별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땅덩어리에 비해 부족한 인구수로 매년 많은 숫자의 이민자를 받고 있는 캐나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은 가정은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는 반면 산아제한을 그렇게 장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녀가 없는 기혼 남자나 미혼 남자들의 불임시술은 이런 이유 때문에 혹시 '해주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러 가면서 80, 90년대에 한국에서 있었던 불임시술 (정관수술로 불렸던)의 추억떠올랐습니다. 일주일 간의 동원 예비군 훈련 소집으로 모여 인원 점검끝나면 언제나 나타나는 보건소 소장님의 불임시술 안내와 수술받으면 훈련을 면제받는 혜택 소개 바로 지원자 모집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모인 예비군들은 웅성거리며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옆줄서있던 같은 단지에 사는 후배가 나가려고 합니다.


"! 넌 미혼이잖아"

"형, 괜찮아. 여기서 일주 일을 있느 지금 끊어버리고 나중에 다시 연결하면 될 거야"

"너 제정신이냐?"


에 있던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도 머뭇거리면서 나가려고 합니다.


"재작년에 했잖아"

"아무 소 안 하고 한번 더 해보려고. 가능하지 않을까?"


당시 이동보건소 차량의 간이침대에 외롭게 누워 시술받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같은 기억촉박한 시간 때문에 부분마취 주사를 놓고 마취약이 퍼지기도 전에 수술을 시작해 여기저기서 ''하는 외마디가 들리고 몸의 어딘가를 가위로 자르는 느낌이 신경을 타고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아제한 (Birth Control)을 나타내는 다양한 그래픽




드디어 병원 수술실로 옮겨지고 한국과 같은 부분마취를 예상했는데 혈관에 미리 연결한 수액관으로 마취 주사를 놓겠다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바로 잠이  뒤 회복실에서 깼습니다. 요즘 말하는 수면마취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위와 대장 검사를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수면 내시경 방식으로 하게 되었고 매번 사용되는 수면마취 약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포폴'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 한 대장 내시경 검사 때는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긴 때문이었는지 검사가 끝나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앞의 생생한 니터 화면을 의사와 함께 보게 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전력 때문에 마취주사를 놓으려는 치과의사에게 마취가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미리 언급하였습니다. 걱정했던 대로 보통 2~3번 주사 놓고 5분 이내에 될 마취가 5번을 놓고 거의 10분을 기다려서야 겨우 이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기다릴 수 없어 완전히 마취가 안된 느낌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 이를 뽑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침내 끝나고 턱과 입에 감각이 없어 발음도 잘 안되고 뽑은 자리를 지혈하는 상태에서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보통 하루에 한 개씩 뽑지 않나요. 이렇게 한꺼번에 두 개를 뽑아버리면 좀 위험하지 않나요?"

"괜찮아요. 젊고 건강하면 4개를 전부 한 번에 뽑기도 합니다."

"네? 4개를 한 번에요?"


마취가 풀리며 찾아오는 아픔과 지혈하는 솜을 악물고 약국까지 가서 처방받은 항생제를 받아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큰집에서 마취가 풀리며 심해지는 통증을 참고 혼자 멍하니 있으려니 독거노인이 따로 없는 것 같은 기분에 서글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 이를 뽑은 저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정성껏 저녁식사죽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먹을 없었습니다. 상태가 엉망이다 보니 어떤 맛도 느낌도 전혀  않았습니다.


'! 이래서 늙거나 몸이 아플 때는 마누라가 옆에 있는 게 제일 좋구나.'


(모든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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