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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Apr 22. 2024

술이 달다고요? 드람뷔(Drambuie)를 권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술을 아끼는 사람


술을 정말 좋아하고 잘 마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년 전에 완전히 끊어버렸으니 '좋아했고 잘 마셨습니다'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집에 손님들집안어른들이 오시날이 많았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부엌으로 달려가면 할머니와 고모들이 남은 음식들 정리하며 서로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시다 어린 저를 보고 '조금 마셔볼래?' 하며 주시홀짝거리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셔본 것은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던 친구의 시골집에 3박 4일로 놀러 갔던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였습니다. 도착한 첫날 저녁 식사 후 찾아온 친구의 고향친구들과 함께 사랑방에서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고향 친구들이 큰 찜통에 받아  막걸리를 보고 놀랐지'옛다' 안주로 부침개와 김치를 사랑방에 넣어 주시는 친구 어머니에게 더 놀랐습니다.


사발에 가득 찬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억과 함께 그때의 농촌지역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막걸리 차림 (출처: eater)


사춘기가 끝난 줄 알았던 고3시절 '내가 이놈의 공부를 꼭 해야 하나'하는 넋두리와 함께 토요일 밤마다 낮에 사놓은 소주를 병째 몰래 마셨습니다. 숙취로 일요일 아침 늦은 시간까지 자는 생활이 반복되는 바람에 힘들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신입생 때 참석한 동문 환영회 자리에서 1등으로 마신 냉면사발 막걸리 때문에 3학년때까지 매년 시음을 보여주는 시범조교로 두각(?)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아마 대학 시절에는 젊음과 청춘의 패기라는 허울 좋은 자아도취에 빠져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군에서의 군복무 기간  접한 다양한 위스키를 통해 그동안 마셨던 국내 기타 재제주가 얼마나 허접하게 만든 술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위스키에 대한 내공이 쌓이맥주, 막걸리, 청주와 같은 발효주보다는 소주, 위스키, 보드카, 떼킬라 같은 증류주에 제 몸이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싱글몰트가 무슨 의미인지, 브랜디드 위스키가 어떤 술인지고 마시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얇은 주머니 사정으로 저렴한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 (Glenfiddich)만 찾아 마시기도 했습니다. 한창  술자리에서 짐빔 (Jim Beam)이나 잭 다니엘 (Jack Daniel's) 같은 버번위스키 1리터 한 병은 마실 정도의 타고난 주량이어서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몸이 아파 결근할 망정 술자리는 빠지지 않고 반드시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결혼 후에도 술자리는 자주 있었지만 와이프는 적당히 마시라는 이야기만 바가지를 긁거나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많이 마시고 집에 와도 바로 뻗어버리거나 주사 없이 조용히 씻고 자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당신은 죽으면 잘 썩지도 않을 거야. 몸이 알코올에 절어있어서.'


버번 위스키 잭 다니엘스 (출처: bourbon & banter)


한류 덕분에 소주는 요즘 캐나다의 주류 판매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민 올 당시에는 구하기 힘들어서 팩으로 포장된 소주 12박스를 4개의 이민가방 바닥에 깔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소주가 바닥을 보일 때쯤 와인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예전부터 발효주는 안 마시고 오직 높은 도수의 증류주만 고집하던 제가 식과의 다양한 페어링을 경험하고 난 후 와인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보다 미각이 조금 더 발달한 덕분에 드라이하거나 스위트한 맛과 다양한 포도 품종의 와인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계에 도취나머지 한동안 소믈리에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통풍의 후유증으로 술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몇 번에 걸친 단백질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 절주등으로 회복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요산 낮추는 약 없이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은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술을 마시면 된다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약까지 먹으면서 계속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냐고 와이프가 묻길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평생 공부하느라 밤새워 본 적이 없는 내가 통풍으로 아파 잠을 못 자서 며칠밤을 세워보니 그 통증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연스럽게 술이 끊어지더라고.'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두 아이들 모두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십니다. 몸이 괜찮았다'술을 아직 끊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마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건강을 잃으면 전부 다 잃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한국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출연자들이 술을 마시며 '술이 달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했습니다. 술을 긴 세월 많이 마셨지만 알코올 특유맛과 목으로 넘길 때의 느낌 때문에 저는 한 번도 달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술이 잘 받네' 그런 뜻이겠지요.


'술이 달다'는 표현을 듣고 특별히 생각나는 술이 있습니다. 술에 빠져 있던 20대 후반 유럽출장으로 바쁘던 시절, 일정을 끝내고 유럽 친구들과 모여 한잔 하는 자리였습니다. 옆에 앉은 네덜란드 친구가 마시는 처음 보는 술이 조금 특이해 보였습니다.


'얼음 없이 차갑게 마시는 것 같은데 무슨 술이야?'
'이 술? 드람뷔 (Drambuie)라고 하는데 마셔볼래?'


드람뷔 (Drambuie) (출처: drambuie daily meal)


한잔을 주문해서 음미해 보았습니다. 처음 입안에서 느끼는 맛은 차가운 위스키인데 바로 단맛이 느껴지며 부드럽게 목을 넘어갑니다.


'술에서 단맛이 나네.'
'스카치위스키인데 꿀과 스파이스가 더해져서 차게 마시면 아주 좋아.'


취향이 아닌 술 같아 한잔 마시고 잊어버렸는데 돌아가는 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이 술을 보며 저같이 폭음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술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애주가이셨던 아버지가 떠올라 한 병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이 드람뷔는 많이 드시지는 않지만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가장 아끼는 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는 분들을 통해 오랫동안 보내드렸던 드람뷔를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께 보내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 우연히 배우게 된 술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오랜 세월 저와 함께 했지만 이젠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상 술은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든 우연히 드람뷔를 보게 된다면 처음 맛보았던 달짝지근했던 그 느낌 함께 오래된 아버지에 대한 추억새삼스럽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전면 사진 (출처: food&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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