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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Feb 21. 2024

성실의 또 다른 의미 - 답답함


  나에게 성실은 아빠였다.


  아빠는 한 회사를 30년 동안 다녔다. 새벽에 공장에서 근무하면 수당을 받을 수 있었기에 아빠는 주말에만 집에 왔다. 일요일 아침이면 옥상 계단부터 집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집의 청결과 살림에 대해 잔소리를 했다. 퇴사 후에는 슈퍼마켓을 했다. 늘 아침 7시에 장사를 시작해서 밤 12시에 마무리를 했다. 명절에도 가게 문을 열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고 나면 아빠는 서둘러 아래층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갔다. 하루라도 문을 닫으면 손님이 떨어진다며 휴일 없이 20년 가까운 세월을 또 그렇게 지냈다. 재개발로 가게 문을 닫은 후에도 아빠는 일을 했다. 서류 배달, 경비 등 나이가 들어 힘들다면서도 일터로 향했다. 이제 더는 안 하겠다며 일을 그만두었는데 다시 또 시작했단다. 여든을 앞둔 아빠는 한 달에 열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성실, 그게 아빠를 대표하는 단어이자, 유일한 강점이었다. 엄마는 아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쌓일 때면 "그래도 가족들을 위해 불평 한 마디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어린 내게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실컷 쏟아낸 후에도 "너희 아버지처럼 성실한 사람이 어디 있니"라며 아빠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애원에 가까운 강요를 했다.


  내게 아빠는 성실해서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성실해서 싫은 사람이었다. 조직에서 버티기 위해 보잘것없는 능력을 ‘열심히’로 포장하는 사람,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게 미덕인 줄 아는 사람, 다른 대안을 찾을 만큼 대범하지도 유연하지도 못한 사람,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앞에서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뒤에서 다른 이를 깎아내리는 사람, 억눌린 감정을 만만한 가족들에게만 분출하는 사람, 궁상을 절약이라 신봉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나는 ‘성실한 사람’을 그렇게 인식했다. 그 때문에 내게 성실은 답답하고, 지루하고, 소심하고, 불편하고, 거북하고, 징그럽고, 좀스럽고, 짜증스러운 단어가 됐다.  


  그래서 난 성실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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