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띠리리링! 띠리리링!’
희주는 침대에 몸을 그대로 파묻은 채 눈을 뜨지도 않고 허공에 손가락을 겨우 뻗어 ‘X’ 자를 그렸다. 그러자 침대 밑에서 굴러다니던 스피커가 알람 소리를 멈췄다. 소리를 얼마나 크게 설정해 놨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스피커에서 알람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울린다. 희주는 얼굴에 오만상을 하며 이불을 몸에 돌돌 만 채로 침대 아래로 기어가 스피커를 주워들었다. 스피커 액정에는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았어요. 수면 수치가 10 이하로 내려오면 알람이 자동으로 꺼집니다.’라는 문구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에잇! 일어난다! 일어난다고!”
희주는 그제야 이불킥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럴 때마다 귀 뒤에 박힌 스마트칩을 빼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는 머리맡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야 잠이 좀 깨는 것 같다. 알람 소리도 잠잠해졌다.
요즘 이렇게 시끄럽게 알람을 설정해 놓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산층 정도 되면 집에 로봇 한 대 정도는 구비를 해 두기 때문에 로봇이 와서 깨워주는 것이 대부분이고, 로봇이 없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수치를 최소화하여 자연스럽게 잠을 깨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들을 주로 이용하지만, 희주는 이렇게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들어야 한 방에 잠이 깨는 것만 같다. 희주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알람 기준을 수면 수치 20 정도로 조정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활력 음료를 꾸준히 마시지 않았더니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피곤하다. 희주는 어기적거리며 냉장고로 걸어가 딱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활력 음료 중 하나의 뚜껑을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쳇, 활력 음료는 의료 보험을 적용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희주는 다 마신 음료수통을 쓰레기통에 대충 던져 버리고는 구시렁거렸다. 그동안 잘 버텼는데, 이제 아무래도 활력 음료를 구비해 둬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희주, 좋은 아침!”
“그래, 죽기 딱 좋은 아침이네.”
“또또, 그 소리!”
퉁명스러운 희주의 반응에 리노가 소리를 꽥 질렀다.
“리노, 활력 음료 제일 저렴한 게 얼마야? 30병 기준으로.”
희주가 리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제일 저렴한 게 한 병에 100바 정도인데, 30병 한꺼번에 사면 2,500바에 살 수 있어. 근데 내 생각엔 제일 저렴한 거 10병 마시느니 좀 비싸더라도 성분 괜찮은 걸로 1병 마시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더 효과가 확실하다고. 볼래?”
리노가 다양한 활력 음료들의 성분 비교표와 활력 수치 증가율 그래프를 화면에 띄우려고 하자 희주가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리노는 얼마 전에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물려받은 로봇이다. 버리기엔 아까운데 혹시 쓸 생각 있냐는 말에 별생각 없이 데려왔다. 아쉽게도 팔다리 없이 몸통만 움직이는 아주 오래된 구형 모델이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쓸 만하다. 혼자 있기 적적할 때 말동무도 되어 주고, 무엇보다 물건을 주문하거나 세금 신고를 하거나 그런 귀찮은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준다. 오히려 너무 똑똑하지 않아서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는데 요즘 어째 간섭이 심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얼마 전 시스템 자동 업데이트 때문인 것 같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리노가 한결 똑똑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한 병에 100바라니, 그럼 한 병에 100,000원이라는 말이야? 에잇, 안 먹고 만다!”
얼마 전에 1000대 1 리디노메이션 (화폐의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이 있었다. ‘1000원’ 당 ‘1바’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바뀐 화폐 단위에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한 병에 100바는 너무 비싸다. 그나마 요즘은 다양한 제약 회사에서 앞다퉈 활력 음료를 출시하며 경쟁하는 덕분에 가격이 조금 내려간 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이 먹는 다양한 식재료들도 인간의 건강 유지와 노화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지만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는 않아. 누구도 이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활력 음료도 그런 거야. 활력 음료에 의료 보험을 적용하려면 말이지…….”
“혼잣말 한 거야 리노. 내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말대꾸하지 말랬지.”
희주가 활력 음료에 의료 보험을 적용해 줘야하는 것 아니냐며 구시렁거리던 소리를 들은 리노가 또 옳은 소리를 늘어놓으려고 하자 희주는 중간에 리노의 말을 딱 잘라버렸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비싼 활력 음료를 마셔서 얻은 기운을 그렇게 써버리고 싶진 않아서 애써 참았다.
“그런데 희주,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데…….”
희주의 호통에 리노가 한껏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그 활력 음료 이야기할 거면 그만둬. 활력 음료는 이번 달 월급 들어오면 그때 사야겠어.”
“아니 그게 아니고, 실은 어젯밤에 집에 박수한이 찾아왔었어. 어제 바로 말해줄까 하다가 네가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버려서 말 못 했어.”
“박수한? 지금 박수한이라고 했어?”
“응, 박수한.”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미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라고 와!?”
희주가 방방 뛰며 리노에게 소리를 질렀다. 리노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지금쯤 눈을 질끈 감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머릿속에 한동안 잊고 있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희주는 애써 침대 밑에서 주워 온 스피커를 다시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스피커가 바닥을 구르며 ‘스트레스 수치가 매우 위험입니다.’라며 울부짖었다.
박수한은 희주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희주는 52세에 첫 번째 결혼을 했다. 요즘은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져서 60세가 다 되어야 결혼할까 말까 하는 분위기인데 희주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한 셈이다. 첫 번째 남편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밋밋한 사람이었다. 그와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관계였는데 아이를 갖는 문제로 트러블을 겪다가 결국 22년 만인 74세에 이혼했다.
희주가 혼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남편과는 달리 남자답고 어쩐지 사람을 홀리는 듯한 매력을 풍겼던 박수한이 나타났다. 희주는 그에게 푹 빠져 82세가 되던 해에 결혼을 결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상한 면 하나 없는 마초 같은 박수한에게 왜 끌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박수한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희주 뿐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두 사람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 희주는 자신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수한과 낯선 여자를 목격하고 말았다. 희주는 수한을 용서했지만, 제 버릇 남주지 못했던 수한은 두 번이나 더 바람을 피우다가 걸렸고, 결국 그와 8년 만인 90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희주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세 번째 남편은 바다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희주를 구해준 현승이었다. 바닷속에서 허우적대던 희주의 목숨을 구했던 그는 산악인이었는데, 희주와 19년을 함께하다가 희주가 109세였을 때 산사태 사고로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먼저 떠나고 말았다. 희주가 가장 사랑했던 세 번째 남편이 죽은 후, 그는 더 이상 누군가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제 희주의 나이가 117세이니, 혼자 지낸 지는 8년 차이다.
인간의 기대 수명이 300세가 되자 사실상 결혼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한 사람과 200년 이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생겨났고, 현재는 결혼하는 사람보다 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실제로 결혼제도가 폐지된 국가도 있다. 희주는 세 번의 결혼, 두 번의 이혼, 한 번의 사별을 겪었지만, 더 많이 겪은 사람들도 허다하다. 희주는 이제 누군가와 연애하는 것도 싫고, 쭉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123년. 인간의 기대 수명이 300세를 돌파했다. 지구상 대부분의 개체들은 성장기의 6배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던 시절, 인간의 최대 수명도 오랫동안 성장기 20세의 6배인 120세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장수를 위한 인간의 열망은 인간의 기대 수명을 조금씩 올려갔다. 그러던 중 노화의 주범인 활성 산소를 완벽하게 억제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고, 생체 재생 및 교체 기술이 고도화되며 인간의 기대 수명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최상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태어나고 완벽하게 영양 상태가 갖추어진 음식을 먹고 자란다. 모든 아이는 태어날 때 의무적으로 귀 뒤에 스마트칩을 심는다. 이 칩을 통해 실시간으로 질병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과 사물 모든 것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희주가 사용하는 알람은 희주의 칩을 통해 수면 수치를 측정하여 그 수치가 10 이하로 내려가면 알람이 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주 초창기에 질병의 신호를 감지하게 되면서 병원의 일부 과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특히 내과는 칩이 보내오는 시그널을 확인해서 약을 처방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 심지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진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건들도 많은 부분 예측하여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자동차와 비행기의 자율 운전 기능이 고도화되며 사고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위험한 일들은 대부분 로봇이 대체했다. 예전에는 모두 사람이 해야 했던 재난 현장에서의 구조 활동들부터 시작해서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청소일까지 모두 로봇이 하게 되면서 인간은 점점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 상황들이 줄어들었다. 인간들 사이에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인해 상해를 입을 경우를 대비한 외과가 겨우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건강 검진이나 노화 방지와 같은 예측과 예방을 위한 의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다만 수명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삶이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신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사람들은 활력 음료를 필수 영양제처럼 마셨는데, 이 음료를 꾸준히 복용하면 아주 나이가 많이 들더라도 젊었을 때처럼 활력이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들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유일하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정 노동이다. 2,050년대 후반에 이미 감정을 가지고 공감까지 해주는 로봇이 개발되었으나 오히려 부작용이 많아 오래전에 전 세계적으로 기술 개발 및 판매가 금지되었다. 희주는 기나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선생님, 보육교사, 고객센터 상담원, 화장품 판매사원까지 네 개의 직업을 거쳤고, 현재는 엠마라는 연예인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첫 직업이었던 선생님 시절만 해도 인간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지식 전달과 수준별 코칭에 있어서는 로봇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인간은 아이들의 인성 교육 위주로 하다가 결국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의 훈육을 담당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 현재는 훈육까지도 로봇이 완전히 대체한 상태이다.
희주는 두 번째 직업이었던 보육 교사 일을 꽤 오래 했다. 하루 종일 울어 대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아이들은 로봇에게 잘 가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한동안 보육 교사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었지만, 보육 교사 하나가 아이를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육원이 문을 닫고 말았다. 전국적으로 어린이 학대 사건이 이따금 발생하면서 부모들은 점차 학대 위험이 없는 로봇에게 보육을 맡기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감정 교감을 할 수 없는 로봇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지만, 오히려 로봇이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를 훈육할 때 아이들의 정서가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로는 로봇 보육 교사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 결국 희주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 직업이었던 고객센터 상담원은 희주가 가장 짧게 몸담았던 직업이었다. 보통 로봇들이 1차적으로 단순 상담을 진행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블랙 컨슈머들을 2차로 인간이 상담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로봇이 아무리 사례와 통계를 들어 합리적인 보상을 제시하더라도 먹히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어르고 달래며 상담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매일 같이 욕설과 고성을 듣는 것이 일상이었고 희주의 스트레스 수치는 언제나 ‘매우 위험’ 단계였다. 희주는 옆자리의 동료가 매일 같이 바뀌는 것을 꿋꿋하게 버텨가며 일했지만 결국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때려치웠다.
네 번째 직업은 화장품 판매사원이었다. 노화 방지를 위한 에스테틱 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늘 성황이었는데, 희주는 연예인들이 드나드는 고급 에스테틱에 화장품을 납품하는 일을 했다. 로봇은 통계와 수치를 제시할 뿐 고객의 성향에 따라 포지션을 바꿔가며 설득하는 일은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 성과가 인간보다 낮았다. 그래서 보통 한 팀으로 움직이며 로봇들이 데이터를 제시하고, 인간들이 오늘까지만 가격을 할인해 준다며 설득하는 식으로 영업을 다녔다. 희주는 이곳에서 엠마를 만났다. 보통은 에스테틱 대표를 만나 영업을 하는 편이지만, 희주는 꽤 말발이 좋은 편이라 에스테틱에 다니는 손님들까지도 사로잡았다. 그 손님 중 한 명이 배우 엠마였고, 엠마는 콧대 높은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영업하던 희주를 눈여겨보다가 매니저 일을 제안했다.
“우욱!”
수한이 집에 찾아왔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희주의 뱃속 깊은 곳이 기분 나쁘게 울렁거리더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희주는 얼른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얼굴을 박았다. 그녀는 방금 마신 활력 음료를 죄다 게워 내고 말았다.
“희주! 괜찮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자식이야. 아까운 활력 음료만 날렸네.”
리노가 깜짝 놀라자, 희주가 입을 헹구며 대답했다. 물론 ‘젠장!’하며 욕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식이 뭐래?”
“박수한이… 아니, 그 자식이 모델 에어전시 사업 시작했던 건 알고 있지?”
리노가 수한의 이름을 꺼내려다가 황급히 ‘그 자식’으로 바꾸며 말했다.
“알 게 뭐야.”
시원하게 게워 내느라 힘이 쭉 빠진 희주가 침대에 털썩 널브러지며 대답했다.
“그 사업이 쫄딱 망한 것 같아. 사업 다 접고 울진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서 새출발을 한다나 뭐라나.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네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인사도 할 겸 한번 찾아와 봤대.”
“진짜 낯짝도 두껍네. 퍽이나 궁금하시겠어.”
“응. 정말 궁금하다고 했어.”
“……로봇들한테 ‘눈치’ 정도는 남겨 놔야 했는데 말이야.”
희주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리노를 흘겨보며 말했다.
“아무튼 다음에 그 자식이 또 나 없을 때 찾아오면 꼭 ‘썩 꺼져!’라고 전해줘. 문자 그대로 ‘썩 꺼져!’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문 쾅 닫아버려. 알았지?”
“오케이.”
“리노, 나 늦었어. 출근한다! 오늘 엠마 영화제 시상식이 밤늦게 끝나서 집에 못 들어올 수도 있어. 쉬고 있어.”
“앗! 희주! 그럼 나 충전기 좀 연결해 줘. 저번에도 그냥 나가버려서 나 방전됐었다고.”
“응? 에너지 10% 남으면 자동 충전 되잖아.”
“아무래도 고장 난 것 같아. 그냥 수동 충전해줘.”
“휴, 알았어. 이번에 돌아오면 고쳐줄게. 나 진짜 간다!”
희주는 리노에게 충전기를 연결해 주고 대충 옷을 껴입은 후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래도 화장은 차에서 해야 할 모양이다. 연예인 매니저 일을 하는 것의 최대 장점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넓고 쾌적한 차를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희주는 서둘러 차에 타 엠마의 실시간 스트레스 지수를 점검했다. 평소보다 높은 수치이다. 이런 날 늦으면 평소보다 몇 배의 짜증을 들어야 한다. 희주는 자동차의 자율 주행 기능을 끄고 수동 주행으로 상태를 변경한 후 끝까지 엑셀을 밟았다. 자동 주행 모드에서는 속도위반을 못 하니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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