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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영 Sep 13. 2024

[소설] 2장. 파라스페이스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희주야, 이것 좀 봐. 진짜 짜증나. 이런 중요한 날 이게 뭐야.”

엠마가 희주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며 짜증을 부렸다. 희주는 차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신체 나이: 30세’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에이, 신체 나이 왔다 갔다 하는 거 알잖아요. 저보다 44살이나 많으면서 신체 나이는 저보다 15살이나 젊네요 뭐. 저는 지금 신체 나이 45세라구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엠마는 올해 161세이다. 풍성한 머릿결과 반질반질하고 주름 하나 없는 피부,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도 감출 수 없는 탄탄한 몸매. 배우라는 직업을 위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 온 덕분에 그녀는 언제나 20대의 신체 나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신체 나이가 어제보다 한 살 늘어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바람에 상당히 예민한 상태이다. 배우라고 해서 모두 다 엠마처럼 이렇게 관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엠마는 촬영 일 외에 모든 시간을 자기 관리에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양제, 피부과, 에스테틱, 각종 주사 요법, 운동 등등 노화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연예인도 로봇이 대체하지 못한 직업 중 하나이다. 정말 인간과 완벽하게 똑같은 데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로봇 연예인이 종종 등장했지만, 그 인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팬들과 소통도 해주고 가끔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는 인간 연예인을 선호했다. 로봇 연예인을 선망한다는 사실을 약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너랑 나랑 같니?”

엠마가 모니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리며 앙칼지게 말했다. 같은 말도 꼭 저렇게 밉게 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희주는 그냥 씨익 한번 웃어주고는 미용실로 차량 목적지를 설정한 후 모니터 채널을 뉴스 보도로 변경했다. 이럴 때는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려주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스럽게도 엠마는 새로운 자극에 쉽게 눈을 돌리는 타입이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어제 기준 <파라스페이스> 입구 도착 인원은 43명이었습니다. 이 중 <파라스페이스> 통과자 수는 28명으로 통과율은 65%입니다. 평균 통과율보다 4%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이 중 내국인은 1명입니다.
 
두 번째로는 반가운 소식 전해 드립니다. 여전히 <파라스페이스> 입구에서 사라진 이들의 거취가 불분명한 가운데 국제천문연맹이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추가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탐사선이 현재 <테라A-148호>가 위치한 지점까지 도착하려면 앞으로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파라스페이스>가 아닌 제3의 사후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인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와! 완전 대박 소식인데요?”

“흠, 저게 될까?”

탐사선 소식에 희주가 감탄사를 내뱉자, 엠마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엠마는 혹시나 주름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지 예민하게 얼굴 구석구석을 체크했다.


“모를 일이죠 뭐. 처음 <파라스페이스>가 발견됐을 때에도 탐사선이 우연히 영상을 포착한 거라고 했잖아요. 이번에도 우연히 뭔가를 발견할지 어떨지 지켜봐야죠. 3년 금방 가요.”




5년 전, 2월 19일. 세계인 중 어느 누구도 이날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날, 인류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 일어났다. 국제천문연맹이 사후 세계의 물리적 공간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118년 2월 19일

속보.
속보입니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스크린과 지면과 매체를 ‘속보’라는 단어가 뒤덮었다. 모든 매체가 하루 종일 사후 세계 발견 소식을 보도했다.


2,118년 2월 20일

바로 어제였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사후 세계의 물리적 공간을 발견했다는 국제천문연맹의 발표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제천문연맹은 더욱 믿을 수 없는 영상을 오늘 공개했습니다. 바로 연맹이 화성에 이어 제2의 테라포밍 프로젝트를 위해 우주로 보냈던 <테라A-148> 탐사선이 1년 전부터 보내온 사후 세계 영상 중 일부입니다. 

<테라A-148> 탐사선은 테라포밍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모모 행성에 정박한 후, 행성의 위성에 전파 신호를 보내 조사하던 중 우연히 지금 보시는 사후 세계 영상을 포착하여 지구로 보내왔습니다. 영상이 포착된 위치는 행성과 위성 사이 중간 지점이었으며,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우주 공간 중 한 지점입니다. 연맹은 지난 1년간 탐사선으로부터 끊임없이 영상을 송출 받아 연구하였으며, 그 공간이 사후 세계의 물리적 공간이라는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2,118년 2월 21일

국제천문연맹이 공개한 사후 세계 영상에 대한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계 전문가들은 연맹이 영상을 조작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점, 연맹이 각국 정부와 유족들로부터 영상 속 포착된 인물들이 실제 사망자들임을 확인했다는 점을 근거로 조작된 영상이 아니라는 쪽으로 중론을 모았습니다.


2,118년 3월 1일

국제천문연맹이 사후 세계 공간의 명칭을 <파라스페이스>로 지정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에 각 종교계에서는 종교적 편향성이 드러난 명칭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2,118년 3월 5일

전 세계 1일 사망 인구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테라 A-128호가 보내온 영상을 분석해 보면 일평균 약 50명만 <파라스페이스> 입구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국제천문연맹은 현재까지 발견된 공간 외에도 나머지 사망자들이 들어가는 또다른 <파라스페이스> 입구가 더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테라 A-148호>의 관측 범위를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2,118년 3월 10일

<파라스페이스> 입구에서 사라진 사망자들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파라스페이스> 입구에 도착한 사람 중 약 60%인 30명 정도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나머지 인원은 <파라스페이스> 입구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각국 정부는 사라진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여 그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며 공통점을 찾고 있으나 뚜렷한 공통점을 찾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일각에서 이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대중에게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2,118년 3월 25일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파라스페이스>가 발견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집단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파라스페이스>로 빨리 들어가고자 하는 추종자들부터 종말론자, 사이비 종교 단체 등 다양했습니다. 이 중 유명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 <파라스페이스>에 대해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만큼 모두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2,118년 3월 31일

내달부터 <파라스페이스> 입구 도착 인원을 일 단위로 확인할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국제천문연맹은 각 국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파라스페이스> 입구 도착 인원의 신원을 파악하고 유족들에게 안내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희 채널에서도 어제 일자 기준 <파라스페이스> 입구 도착 인원, 통과 인원, 그리고 내국인이 있을 경우 내국인 숫자를 일 단위로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난 좀 무서워. 사실 <파라스페이스>가 진짜 천국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거라면 그냥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아,”

 엠마가 뉴스를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리며 말했다.


“그래요? <파라스페이스>로 들어간 사람들 표정은 좋아 보이던데요. 그런 거 보면 천국이 맞는 거 아닐까요? 사라진 사람들은 다들 무진장 충격 받은 것 같았잖아요.”

“너 은근히 <파라스페이스>에 관심이 많구나?”

“워낙 들리는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사라진 사람 중에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도 많다면서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사람도 있고. 지옥에 가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리고 <파라스페이스>로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대요.”

“아 몰라 몰라, 어쨌든 난 싫어. 난 <파라스페이스>인지 뭔지보다 여기가 더 좋아."


엠마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로사가 최근 개봉한 영화 시사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엠마는 로사의 영상이 나오자 신경질적으로 모니터를 꺼버렸다. 


“나 오늘 시상식에서 쟤보다 낮은 상 받으면 진짜 죽어 버릴 거야.”

“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릴. 지금까지 관리한 거 아까워서 어떻게 죽어요? 그리고 로사는 아직 코찔찔이잖아요. 아직 60살도 안 됐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린 애들이나 좋아하지 100세 이상은 쟤한테 관심도 없어요. 미모로 보나 연기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언니가 꿀릴 게 단 한군데도 없다니까요. 이번 영화 개봉하면 스포트라이트 완전 다 가져올 테니 걱정 말아요.”


희주가 사탕발림하며 엠마를 살살 달랬다. 물론 엠마도 그것이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찌나 듣기 좋은 말만 쏙쏙 골라서 해주는지, 그녀의 말발에 홀라당 넘어가고 만다. 물론 그것이 희주를 매니저로 스카우트 한 주요 이유이긴 했지만 말이다.


엠마를 미용실에 데려다 준 희주는 원장에게 오늘 엠마 심기가 많이 안 좋으니 신경 좀 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 시상식 때 입을 드레스 픽업을 위해 차를 돌렸다. 


희주는 매사에 예민한 데다 신경질적이고, 게다가 열정적이기까지 한 엠마가 정말 신기했다. 161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얼굴에 생기는 주름 하나에 신경 써가며 아득바득하며 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희주는 하루하루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었다. 의지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100세가 넘어가면서 삶에 재밌고 새로운 것이 없었다. 아침이 그녀를 깨우고 밤이 그녀를 재울 뿐이었다. 하루가 지나가 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직도 200년 가까이 더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득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특히 <파라스페이스>가 발견된 후로는 빨리 저곳에 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2123년 12월 31일 23시 57분]


한 번에 최대 9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스타디움에 좌석, 입석 할 것 없이 관중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톨레랑스 영화제>의 마지막 주인공을 환영하기 위해 스타디움의 거대한 지붕이 천천히 열리며 검푸른 하늘이 드러나자, 9만여 관중의 환호성이 스타디움의 지붕을 넘어 서울 전역을 뒤덮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2123년이 3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톨레랑스 영화제>도 올 한 해를 빛낸 최고의 배우를 위한 대상 시상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벌써 30년째 <톨레랑스 영화제>의 단독 MC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사회자가 마지막 시상을 앞두고 화려한 제스처와 능숙한 언변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시상식장 전체를 뒤덮은 대형 스크린 속에 대상 후보자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보자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시상식장에 모인 관중들의 환호성을 질렀다. 


엠마도 대상 후보에 올랐다. 엠마의 얼굴이 스크린에 비추자, 엠마는 턱을 치켜들고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다른 어린 배우들에게는 찾을 수 없는 여유로움이 넘쳐흘러 보였지만, 실상 화면에 잡히지 않은 엠마의 왼손은 드레스 한쪽을 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동안 배우 활동을 하면서 대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지만, 수상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이번에 새로 촬영한 영화의 개봉 시기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올해만큼은 정말 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영화 개봉이 늦어지는 바람에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엠마 다음으로 로사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했다. 요즘 떠오르는 스타답게 환호성 소리가 엠마의 두 배는 되는 듯했다. 엠마는 몹시 심기가 불편했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련한 모습이었지만 희주는 엠마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위치에 앉아 엠마를 바라보고 있던 희주는 시큰둥하게 시상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엠마의 매니저 일을 하고 나서 몇 년간은 시상식 때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손에 땀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매번 맨 마지막 관문에서 미끄러지기만 하니 이제는 별 기대도 감흥도 없다.


“2123년 올해 대상 수상자는…… 영화 <꿈의 재생>의 로사입니다! 축하합니다!”

‘펑! 펑! 펑!’

“와아아아아-!”

사회자가 수상자를 발표하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커다란 폭죽 소리와 함께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꺄아아아아악!!!”


그때, 폭죽 소리, 함성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희주의 등줄기를 타고 벌레 여러 마리가 지나가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순식간에 관중석 한가운데가 초토화되었다. 백여명 남짓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의 하얀색 와이셔츠가 붉게 물들었고, ‘사랑해요 로사’ 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여자들의 발에서 벗겨진 하이힐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문제는 폭발음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쾅! 콰쾅!’

2차 폭발음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미리 설치되어 있던 폭죽이 한번 더 터지며 온 하늘을 반짝이는 불꽃으로 가득 채웠다. 희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이 만들어낸 <Good Bye 2123! Happy New Year!> 이라는 문구가 희주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파편이 희주의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마치 슬로우 모션 효과를 건 영상처럼 파편의 모양새와 날아드는 속도감이 모두 보였다. 눈부신 불꽃이 그녀를 에워쌌고, 파편이 조각조각, 그녀의 온몸 깊숙이 파고들었다. 희주는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희주의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Good bye 2123…….”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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