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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Sep 11. 2019

미안하다는 말

더이상 감동스럽지 않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좋아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내 마음을 더 흔들었다. 감수성이 절정에 달했을 20대 어느 무렵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길 정도였다.

 

미안해, 라는 말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못을 순간 회피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네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다쳤구나,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해 정말 나도 마음이 아파, 라는 의미의 말, 미안해. 친구는 그건 네가 누군가 위에 있다는, 그 사람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진심으로.


남편과 결혼을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 역시 미안하다는 말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른 살, 남편과의 연애가 3년 접어드는 때 나는 이별을 결심했다. 나는 그저 위로를 바랄 뿐인데 이 남자는 언제나 객관적 태도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어린 나는 내 남편이 된 이 남자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남자와는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이 없었다. "헤어지자." 그땐 진심이었다.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떨궜다. 그는 이내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줘. 내가 만약 네가 싫어하는 행동을 또 하면 그때는 원하는 대로 해줄게."


미안하다는 남편의 말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됐다. 내 안의 결핍이 혹시 이 남자가 완벽해야만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내 괴로움은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아닐까. 남편은 언제나 그랬다. 내가 불만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스스로 옳다고 억지 부리는 적이 없었다. 잘못을 대면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제야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그러워졌다. 이듬해 나는 이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이 무릎꿇고 빌어도 감동스럽지 않은 때가 있다.(출처=pixabay)


결혼을 하면 장점은 단점이 되고, 단점은 그냥 단점이다. 남편은 나와 크게 다투면 혼자 금세 풀린다. 나를 있는 대로 화나게 해 놓고는 내 앞에 와서 사과한다. 다툼이 거듭되다 보니 남편의 미안하다는 말이 감동스럽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 내가 싸우는 중에 "이따가 미안하다고 말하기만 해 봐"라고 큰소리친 적도 있다. 남편은 역시나 반나절도 안돼 내게 사과했다.


시어머니에게 이런 문제토로했다. 남편과 싸우고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날이다.(정말 그러면 안되는데 그때는 너무 답답해서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친정 엄마한테는 차마 못하니 말이다.) 시어머니는 나를 달래면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라고 하셨다.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셨겠지만, 혼자 가슴을 치셨을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니 내 투정이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분이 다 안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달래며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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