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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Aug 22. 2019

알뜰한 남편의 쇼핑 노하우

중고나라의 파워 바이어

임신을 한 지 25주 됐을 무렵 우리 부부는 괌에 갔다. 바다 수심이 낮아 수영을 좋아하는 내가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서다. 우리는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괌 시내를 구경했다. 괌에 도착한 날 저녁 남편과 나는 각종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시내 면세점에 들어섰다. 남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루이뷔통 가방이나 구찌 벨트가 아니었다. 레고의 스타워즈 손목시계였다.


스타워즈 광팬인 남편이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남편은 한동안 진열장을 떠날 줄 몰랐다. 내게 스톰 트루퍼가 예쁜지, 다스베이더가 예쁜지 심각하게 물어봤다. 그러다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급히 꺼냈다. 휴대전화로 무엇인가를 검색한 그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중고나라에 만 원 싼 새 제품이 올라와 있어." 


분명 환희에 찬 목소리였다.


내 남편은 중고나라를 애용한다. 언젠가 나에게 "중고나라에서 파는 새 제품을 사는 게 가장 물건을 싸게 사는 방법"이라며 노하우를 전수해 준 적이 있다. 우리 집에 UHD TV는 누군가 아마존 직구로 사놓은 새 제품으로, 남편이 중고나라에서 구입했다.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수백만 원은 싼 가격이었다. 남편이 바라고 바랐던 소니 VR 기기 역시 중고나라를 통해 샀다.


남편은 판매자로도 활동한다. 한 번은 남편이 아이패드 새 제품을 올리자마자 사겠다는 문자가 쏟아졌다. 남편은 자신이 너무 싸게 올린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처음 연락을 해온 사람과 거래를 하기로 했는데 다른 사람이 만 원 더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남편은 흔들렸다. 상도의와 실제 손에 쥘 이득 사이에서 갈등했다. 나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만 원 더 준다는 사람에게 팔았을 것이다. 핑계는 만들면 되니까. 거짓말에 능하지 못한 남편은 만 원에 상도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편의 중고나라 '득템'이 항상 성공적인 건 아니다. 나를 위해 웃돈을 주고 성시경 콘서트 티켓을 구입했는데 판매자가 잠수를 탔다. 남편의 중고나라 인생 첫 사기였다. 같은 사기꾼에게 당한 사람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여 방법을 강구했다.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나는 오픈 채팅방에 참여한 현직 경찰도 그 사기꾼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라며 토닥였다.


정말 튼튼한 피규어처럼 생긴 아이언맨의 건틀렛.(출처=알리익스프레스)

남편이 최근 빠진 곳은 중국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다. 없는 게 없는 데다 가격은 엄청 싸고 배송비가 무료인 제품이 수두룩하다. 단점이라면 배송이 한 달가량 걸리고, 반품이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워낙 가격이 싸기 때문에 이런 단점은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남편은 말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 중국어로 된 해외 택배가 줄줄이 배달되고 있다.


대부분 쇼핑이 만족스러웠지만, 아이언맨의 건틀렛은 남편을 좌절케 했다. 남편은 마블의 빅팬이기도 한데 언젠가는 마블 히어로 피규어를 모으는 게 로망인 남자다. 나는 넓은 집에 이사 갔을 때 모으라며 그를 달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실물 크기에다 3만 원밖에 안 하는 아이언맨의 건틀렛은 그야말로 '득템'이었다. 남편은 배송 기간 동안 건틀렛을 진열할 곳까지 깨끗이 비워뒀다.


드디어 배송 날. 상자가 아니라 비닐로 배송된 것이 어쩐지 수상했다. 남편은 서둘러 비닐을 제거했다. '레자(인공가죽)'로 만들어진 건틀렛이 위용을 드러냈다. 남편은 실망한 표정으로 건틀렛에 손을 넣어 보았다. 크고 두꺼운 남편의 손에 꼭 맞춤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서둘러 건틀렛을 벗어야 했다. 레자 냄새가 지독해도 너무 지독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아이언맨의 건틀렛은 우리 집 베란다 빨랫줄에 널려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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