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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이성 사이의 선택

by 정지영 Feb 08. 2025

"권위는 참된 이성으로부터 나오지만, 이성은 결코 권위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참된 이성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모든 권위는 허약한 것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참된 이성은 그 자체의 힘으로 굳건하고 변함없이 유지되며, 어떠한 권위의 동의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For authority proceeds from true reason, but reason certainly does not proceed from authority. For every authority which is not upheld by true reason is seen to be weak, whereas true reason is kept firm and immutable by her own powers and does not require to be confirmed by the assent of any authority.)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자연의 분류] 중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권위자의 말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전문가의 조언, 정부의 지침, 선배나 상사의 지시는 별다른 의심 없이 신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의 말처럼, "권위는 이성에서 나오지만, 이성은 결코 권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권위를 신뢰하고, 언제 이성을 따라야 할까요?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9세기 서유럽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이자 신학자입니다. 그는 프랑스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 대머리왕(Charles the Bald) 궁정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활동했습니다. 당시 학문은 교회 중심이었으며, 성경과 교부 철학이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리우게나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이성이야말로 신의 진리를 탐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자연의 분류(Periphyseon)』에서 "이성이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강조하며, 신학적 진리 역시 이성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반론이었으며, 결국 그의 저서는 13세기에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이후 중세 스콜라 철학과 근대 계몽주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성과 권위의 관계에 대한 에리우게나의 말은 우리에게 이성과 권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이성과 권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1961년 실험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참가자들은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참가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는데, 대다수가 권위자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권위에 쉽게 굴복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1971년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사회적 권위와 역할이 인간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일반 참가자들이 감옥 환경에서 경비 역할을 맡게 되자 잔혹한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이는 맹목적으로 권위를 따르는 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오늘날 우리는 합리적 사고가 중심이 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권위가 이성을 압도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성을 실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첫째, 전문가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의료,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따를 때는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며 근거를 분석하고 다양한 정보를 비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 정치적·사회적 권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정부나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는 항상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가짜 뉴스나 정치적 선전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제공된 정보의 논리적 근거를 검토하고,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셋째, 조직 내 위계질서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회사, 군대, 학교 등에서 상사의 결정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부당한 명령이나 불합리한 규칙을 접했을 때,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질문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넷째, 대중의 권위를 따르지 않고 독립적 사고 유지해야 합니다. 특정 브랜드 선호, 다이어트 방법, 유명인의 추천 등은 대중이 선택한 것이지만,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성을 따르는 삶은 단순한 철학적 원칙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더욱 굳건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있으며,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진보를 이끈 사람들은 항상 권위보다 이성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7세기 교회의 권위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관측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뒷받침하며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했으나, 결국 종교재판을 받아 가택연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이후 과학 혁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며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용기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진하며, 인종 차별 철폐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권위보다 이성을 따르려면 비판적 사고, 독립적 판단, 실천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권위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근거를 점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의심은 탐구의 출발점이며, 깊이 있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또한,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내적 확신이 중요합니다. 대중이 따르는 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논리적 판단을 내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당한 권위에 맞설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성을 따른다는 것은 생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작은 실천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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