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란 순수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형제들이여, 창조하는 놀이에 참여하려면,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원한다. 이제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가 자신의 세계를 정복한다."(The child is innocence and forgetting, a new beginning, a game, a self-rolling wheel, a first movement, a sacred Yes. For the game of creation, my brothers, a sacred Yes is needed: the spirit now wills his own will; the world's outcast now conquers his own world.)(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어린아이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놀이를 통해 배웁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기존의 규범과 틀에 적응하며 창의성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순종과 인내를 상징하는 ‘낙타’, 두 번째는 기존 가치를 부정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사자’, 마지막은 창조성을 지닌 ‘아이’입니다. 그는 ‘아이’를 가장 높은 단계로 보며, 진정한 창조적 정신의 상태로 규정합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아이’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니체가 말하는 ‘망각’은 단순한 기억의 소멸이 아닙니다. 이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정답 찾기에만 몰두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피카소는 "라파엘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처럼’이란 기존 틀을 넘어서는 창조적 시각을 뜻합니다.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목적 없이 순수한 즐거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이 자체를 즐깁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탐구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더욱 깊이 이해합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두려움보다 즐거움을 느낍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니체는 ‘사자’가 기존 가치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단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의지를 긍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어른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외부 가치를 강요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기대와 강요로 인해 자기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니체의 비유를 적용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낙타’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강요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가 자신의 세계를 정복한다." 이 말은 자기 극복과 창조적 삶을 의미합니다. 비교와 경쟁 중심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니체는 단순한 부정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신성한 긍정’이라 부릅니다. 부모와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교육하고 있습니까? 정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부터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첫걸음을 내디딜 때, 진정한 배움과 자유가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