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Sep 13. 2020

논어를 통해 본 리더십의 조건(2)-節用而愛人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자왈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 

논어 학이편 5장






2. 절용이애인 節用而愛人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재물을 절약하고 아낌으로서(節用) 백성을 사랑한다고 풀이된다. 그리고 '節用'과 '愛人'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기도 하고 별개의 연속되는 군주의 행위로 풀기도 한다. 즉 '나라 살림을 아껴함으로써 백성을 사랑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두 군주의 행위가 인과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과관계의 설정이 좀 어색하다.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걷은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아끼는 것이 원인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결과라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국민이 힘들게 낸 세금을 아껴쓴다고 보면 그 인과관계가 자연스러운데, 이 해석은 그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놓고 있다. 그래서 군주의 두 행위를 분리하여 별개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구절 '경사이신'에서 '경사'와 '신'을 이어주는 '而'를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풀면서 바로 다음 구절인 '절용이애인'에서는 병렬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푸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그런데 많은 논어 해석들이 이런 오류를 범한다.


  이런 해석의 비일관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 '절용'을 '나라의 재물, 세금을 아낀다.'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즉 세금을 아끼는 군주의 행위가 백성을 사랑하는 행위의 원인이라는 상식적 인과관계와는 반대되는 해석을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라의 제물을 아끼고 백성을 사랑한다는 두 가지 별개의 행위로 푸는 것이다.


  그런데 '節用'을 왜 경제적인 의미로만 한정하여 해석해야 할까?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군주의 '用'은 단지 경제적인 행위로만 제한하여 해석해야만 하는 것일까? 군주는 나라의 재물뿐 아니라 나라의 법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군사를 모아 전쟁에 사용하기도 하며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 살림을 함께 하기도 한다. 군주의 행위(用)은 이렇듯 종합적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여 '節用'의 의미를 "군주는 나라의 경제, 법, 국방, 인재 등용 등 모든 통치행위를 함에 있어 함부로 하지 않고 절제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면 '통치행위를 절제하는 것'(節用)과 '백성을 사랑하는 것'(愛人)은 인과관계로 묶을 수 있다.



 '節用'의 의미를 "군주는 나라의 경제, 법, 국방, 인재 등용 등 모든 통치행위를 함에 있어 함부로 하지 않고 절제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면 '통치행위를 절제하는 것'(節用)과 '백성을 사랑하는 것'(愛人)은 인과관계로 묶을 수 있다.



  군주가 통치행위를 절제하여 한다는 것은 앞의 구절 '경사이신', 즉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여 믿음을 얻는다는 것과 일관성을 가진다. 또한 다음 구절 '사민이시', 즉 백성에게 나라 일을 시킬 때 백성들의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하여 한다는 올바른 군주의 통치행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절용을 군주의 전체적인 통치행위의 절제라고 해석하면 그것이 백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되는 이유는 뭘까? 군주는 나라와 백성에 대해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폭군이 그런 힘을 함부로 행사하려 할 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민주적 장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런 힘을 가진 군주가 스스로 그 힘을 거두고 절제하려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가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니었을까?


  절용의 해석에 이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人'에 대한 해석이다. '人'을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왜냐하면 다음 구절 '사민이시'에서 '民'이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人'이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그 다음 구절에서도 '사민이시'가 아니라 '사인이시'라고 해야지 굳이 '民'을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人'은 나라의 관료 계층을, '民'은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그러고 보면 군주의 통치행위는 백성에게 직접 미치기 보다는 관료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통치행위의 매개로 활용하는 계층이 관료들이지 직접적으로 백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국가와 같이 다중을 이끄는 리더가 모든 백성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데는 문제 발생의 소지가 있다. 나라의 관료 조직이 정해 놓은 틀과 일처리의 흐름이 있는데 군주가 백성을 직접 상대하다보면 관료 조직에 반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백성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관료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신의 힘을 백성들에게 직접 행사하지 않고 관료 조직을 거치는 것이 권력의 힘에 대한 절제일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조직의 리더에게도 이러한 절제의 덕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장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지나치게 인기가 많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교장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민원을 직접 청취하여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사를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런 교장은 학생, 학부모에게는 좋은 교장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교사를 무시하고 교장에게 직접 어떤 조치를 요구하는 일이 생기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교장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 


  나라의 군주는 직접 백성에 대한 사랑을 어떤 행위로 구현하지 않고 관료 조직을 통해서 해야 한다. 군주의 애민 정신은 관료 조직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되어야 나라의 틀이 바로 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절용이애인'을 "(군주는)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을 백성들에게 직접 행사하지 않고 절제하여야 한다. 백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관료조직(人)에 행사함으로써 그 사랑의 영향력이 백성들에게 미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어서 해석해야 한다. 


출처 : 네이버 한자사전


 '節'의 갑골문을 사람이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는 '절제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제한다는 것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스스로 거두어 들인 상태에서 기다린다는 뜻이다. 리더는 함부로 나서서 돌아다니며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선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도 그런 리더의 경솔함은 결국에는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작가의 이전글 논어를 통해 본 리더십의 조건-(1)경사이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