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는 갈 데가 없으면 갈대밭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순천만 해안선의 길이는 9.8km며, 총면적은 27km2다. 이중에 갯벌은 21.6km2이고, 갈대밭 군락지는 5.4km2다. 용산(龍山)이 갯벌과 갈대밭 군락지를 파수꾼처럼 지켜주고, S자 냇강을 바다로 유도하는 모양새다.
사람의 키보다 더 큰 갈대의 군락지는 국내 최대 규모다. 갯바람이 부는 날이면 갈대는 바람과 햇살의 기운에 따라 초록빛으로 일렁이며 무리 지어 춤을 춘다. 갈대숲 전체가 일제히 이리저리 움직이는 광경은 망망대해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위엄이 있고 장엄하며 아름답다.
순천만 갈대밭(가을)
태풍이라도 불어오면 날이면 거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듣는 것과 같다. 갈대는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 여기서는 '갈대'가 된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 물떼새 등 희귀조 혹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1종이 날아든다.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 조류가 가장 많다. 이외에도 도요새, 청둥오리, 혹부리오리, 기러기 등 약 140종 새들이 순천만 일대에서 월동하거나 번식한다.
2006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람사르 협약은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약속이다. 생태·사회·경제·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습지를 보전 이용함으로써, 자연 생태계로서의 습지를 범국가적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보전 목적의 협약이다.
갈대밭 쉼터
습지의 데크길 탐방로를 따라 산책할 수 있다.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쉼터의 벤치에서 전시된 시를 읽거나, 짱뚱어 칠게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용산 전망대에서 S자 갯골, 둥근 원형의 칠면초 무리, 와온 해변의 작은 어선과 솔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붉게 물드는 구름과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오가는 작은 유람선 뒤꽁무니를 따르는 물결과 반사되는 수면은 가히 환상적이다.
순천만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다. 사진작가들이 경쟁하듯이 셔터를 누른다. 잠시 후 사거라 질지라도 노을빛은 언제나 황홀하다. 온 세상을 불태울 듯한 노을의 시간은 짧다. 우리 인생처럼.
순천만 저녁노을(와온)
오늘(2022.08.05. 금요일)은 순천만의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로 하고 오후 2시경 순천대 동천(東川) 근처 숙소에서 나왔다. 나의 보물 혹은 때때로 철부지 애물단지 2호가 일주일간 어린이집 여름방학을 하여 동반하여 순천에 내려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부모가 맞벌이다. 요즘은 기저귀를 떼는 연습 중이다. 기저귀를 안 채운 어젯밤에는 이불에 쉬를 했다. 그래도 당당하다.
나에게 주어진 개인 시간은 오늘 하루다. 내일은 손님들이 오기로 예정되어 있다. 나의 옆지기는 발목이 부실하다. 1호와 3 호등 어린 손님이 포함되어 있어 여름철 장시간 야외 탐방은 어렵다.
순천대 앞에서 순천만 정원 경유 순천만 습지행 유일한 버스인 66번을 타고 약 1 시간 정도 걸려 순천만 습지에 도착했다. 당초에는 광활한 순천만 습지의 갈대 평원을 여기저기 자세히 둘러보고 용산을 걸어올라 전망대에서 칠면초와 S자 곡류천의 저녁노을을 보는 것이 목표였다. 이동 중에 약간의 심경 변화가 왔다.
팔마비
순천만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용산에서 하산하여 팔마비,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길, 옥천 서원을 탐방하기로 일정을 변경 확장했다. 즉, 순천만 저녁노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쉽지만 순천만 저녁노을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그 대신 해 질 녘 저녁 시간 역사적인 인물들과의 만남은 좋은 추억거리로 남게 되었다.
백의 종군의 길
여름 해가 길다고 하지만, 팔마비의 고려 말의 청백리 최석(崔碩)을 만나고,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길에서 뵙고,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옥천 서원을 찾아서 갔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갔고, 달이 높이 떴다. 아쉬운 것은 칼라 대신 흑백사진만 남은 점이다.
옥천서원
옥천 냇가의 가로등 불은 옥천 물에 빠져 투영되어 흔들리고 있었고, 풀벌레 소리와 물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다. 서원 바로 옆의 임청대 느티나무밑에서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로 귀양 온 타향살이 동반 친구 김굉필(金宏弼) 선생과 조위(曺偉) 선생의 이야기 소리가 달빛 아래 낮은 목소리로 쓸쓸히 들려오는 듯했다.
조위 선생은 화병으로, 김굉필 선생은 연이은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 10)의 결과물로 연산군이 보낸 한양의 금부도사가 가져온 사약을 받아 마시고 철물 시장터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칼날에 상하게 할 수 없다고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사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의 목이 철물 시장터에 걸렸다고 한다. 귀양살이를 마감했다.
특히 김굉필 선생은 고향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 근처에 묘소가 있다. 그곳은 우리 학생들의 봄가을 소풍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동 탐방 경로는 다음과 같다.
순천대 앞 버스 정류장->웃장/버스터미널/아랫장/순천역/순천만정원->순천만 습지/용산 전망대->순천역->팔마비/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옥천서원/임청대
1. 순천만 습지/용산
흑두루미 게이트
1) 흑두루미 게이트
오후 3시쯤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흑두루미가 갯벌에 내려앉는 형상의 출입구 철제 문틀이 보여 버스에서 내렸다. 젊은 청춘 남녀 한 쌍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데이트에 방해될까 봐 조심조심 미리 앞질러 걸어갔다.
매표소
2) 매표소/입장료
금요일 여름 한낮이라 구경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하산할 무렵 관람객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순천만의 석양을 보러 오는 저녁노을 탐방객들이다.
3) 출입구
안내하시는 분의 잘 구경하고 오시라는 친절한 인사와 미소가 돋보인다. 100점을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무료로 관람하는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주소 등록지 기준으로는 아직 순천인인데, 플러스알파가 있었다. 참고로 성인 입장료는 8,000원이고, 순천인은 반값이다.
무진교
4) 무진교
무진교는 갈색 나무무늬로 만든 무지개 아치형의 다리다. 순천의 자랑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서 따온 것으로 생각된다. 안개가 낀 날이면 무진교와 동천강과 갈대가 멋진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무진교 아래로 동천 강물이 흘러가 개벌의 갯강이 되고 칠면초 군락지를 휘 두르고 마지막으로 바닷물과 합류한다. 손님을 기다리는 유람선 3척이 보였다. 관광객을 태우고 갯강을 따라 원형의 칠면초 자생지 근처까지 갔다 되돌아온다. 무진교 중간 지점 아치형 꼭지에서 순천 방향과 용산 방향 그리고 바다 방향으로 사진 촬영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습지 탐방로
5) 습지 탐방로
초록의 광활한 습지에 갈대가 사각 사각거리며 노래하며 춤을 춘다. 갈대숲 아래 물기가 있는 회색 습지 바닥에는 짱뚱어 칠게 등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하천과 바다 사이의 갯벌은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은 플랑크톤, 미내럴등이 풍부하여 땅 위 동식물 날짐승 물고기 등 모두를 먹여 살려 준다.
갈대숲을 보호하고, 탐방객들의 쾌적한 산책을 위하여 용산 입구 부근까지 목재 발판으로 데크길을 잘 설치하여 두었다. 데크 쉼터에서 어느 노부부가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해를 구하고 시를 걸어 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책길에 순천만 관련 시인들의 시, 조류 사진 설명서 판을 곳곳에 걸어 두었다. 데크길 끝나는 지점과 용산 올라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용산은 비상하는 용의 형상이다.
경내에 세워 놓은 각종 자료를 기준으로 '순천만의 8경'을 정리하여 보았다.
갈대 길
1경(景) : 12km 갈대 길
’ 바람에 포개지는 ‘ 12km(약 30리) 순천만 갈대길이다. 순천만 북쪽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어 순천만까지 12km다. 가을이면 갈대 씨앗은 깃털을 달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날린다. 갈대밭 영토 전이 확장의 역사는 날아다니는 씨앗으로, 잔뿌리로 이렇게 이루어졌다. 동천 따라 갈대길과 자전거길이 순천만까지 나란히 달린다.
S자 갯골
2경 : S자 갯골
강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 만나는 곳이 순천만이다. 반은 짜고 반은 싱거운 물이 S자 갯골을 이루어 수륙양용 생물체들이 산다. 대표적으로 짱뚱어다.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 온몸으로 물밖으로도 뛰어다닌다. 그리고 옆으로 걷는 칠게가 있다. 위급 시 언제나 몸을 숨길 수 있는 아지트가 구멍 모양으로 숭숭 주변에 널려 있다.
갈대밭 속살
3경 : 바다의 숨은 속살 갯벌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다. 갯지렁이, 게, 맛조개, 새꼬막, 참꼬막, 낙지, 키조개 등 다양하다. 멸종위기의 새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
원형의 갈대 군락
4경 : 둥근 원형 갈대 군락
갈대는 씨앗과 잘린 뿌리에 의해 번식한다. 주로 잘린 뿌리로 번식을 한다. 개벌에 정착 후 원형 모양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해 가다가, 다른 군락과 만나 더 넓은 갈대 군락을 형성한다. 물방울처럼 응집력이 있다.
5경 : 새벽안개 순천만 무진
향토작가 김승옥 무진기행의 아래 발췌 내용이 순천만 안개를 잘 대변해 준다. 재수 좋은 안개 낀 날, 용산에 올라가면, 안개가 갈대밭, 갯벌, 바다를 포근히 감싼 무진을 볼 수 있다.
“무진에 명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흑두루미
6경 : 순천만 겨울 진객 흑두루미
학명 Grus Monacha다. ‘두루미 수도자‘란 의미다. 출입 문위에 표현된 흑두루미는 10월 중순 천마리가 하얀 베일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성직자처럼 조용히 내려와 서식을 하다가 3월 말이면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훌쩍 떠난다.
와온 해넘이
7경 : 갯벌 속에 빠진 와온 해넘이
와온은 순천만 습지 용산전망대의 좌측에 있다. 순천만의 작은 어촌 마을이다. 꼬막 생산지이며, 앞바다 갯벌 속에 빠진 솔섬을 배경으로 해넘이가 장관이다. 갯벌이 해를 품으면 붉은 기운이 용솟음친다. 와온해변 카페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와온 석양이다. 아름답고 황홀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칠면초
8경 : 순천만의 화려한 미소 칠면초와 용산 전망대(順天灣 龍山 展望臺)
바다와 가까운 갯벌 상부에서 자라며 봄에는 새싹이 자줏빛을 띠다가 자라면서 초록색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다시 자줏빛으로 바뀐다. 1년에 색깔이 7번 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을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 가을이면 화사한 붉은색 칠면초 군락과 황금빛 갈대의 물결, 검은색 갯벌이 만나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용산(전망대는 우측)
용산 전망대에 올라야 칠면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개울 위 출렁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외국인 두 쌍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로 답해 준다. 곧이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 명상의 길‘과 ’ 다리 아픈 길‘. 나는 우측의 다리 아픈 길을 택했다. 다리 아픈 길은 가파른 산길에 계단이 계속되어, 정말 다리 아프다. 그 길을 택한 이유는 올라가면서 S자 갯강과 갈대밭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습지의 푸른 갈대의 일렁임을 보고 갈댓잎끼리 부딪히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음미할 수 있다. 갈대도 바람에 뉘어지고 흔들린다. 그러나 꺾이지 않는다.
솔바람다리 근처에서 본 순천만
작은 계곡사이의 솔바람다리에서 바닷물과 갯벌과 소나무 향기가 섞인 순천만 특유의 갯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지상, 위층, 아래층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나는 윗 층 중앙을 좋아한다. S자 갯강과 칠면초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칠면초
와온 해변 쪽에 조그마한 섬이 있고 고깃배들이 바다에 떠 다닌다. 칠면초가 압권이다. 지금은 푸른색 혹은 갯벌 색이다. 봄에는 자줏빛, 여름에는 푸른색, 가을에는 자줏빛, 붉은색이 되어 낙조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겨울에는 눈과 같은 흰색이 된다. 바닷물을 먹고 자생한다. 어떤 칠면초 군락은 직경이 100m는 되어 보인다. 그런 원이 십여 군데 무리 지어 있다.
유람선
S자 갯강에는 작은 통통배가 은빛 햇살을 받으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세월을 잡아두고 싶은 나의 마음과 같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이다. 흐르는 세월을 어찌 거스를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이대로 흘러가자. S자 샛강이 애잔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