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하나 본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직업환경의학과에는 대한직업환경의학외래협의회 (KOEC)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이건 학회랑 약간 다른데 주로 안전보건공단이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의들을 직접 교육하기 어려우니 교수&전문의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사단법인에 교육을 위탁해서 실무담당 전문의들 역량을 끌어올리는 목적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KOEC이 온라인 강좌를 시작했다. 업무적합성평가 실무에 관한 것인데, 다양한 장기별로, 그리고 특수 직종별로 업무적합성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데 나는 약간 이런 강의들에서 제시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한다. 업무적합성 평가를 한다고 이 강의들에서 간혹 말하는 공식 혹은 수식을 줄줄 외워서, 그걸 찾아서 계산해서, '당신은 계산 결과 이 정도 심폐기능을 가지고 있으니, 심혈관계 부담정도가 이 정도인 이 작업을 하루에 30분만 해야합니다.' 식으로 이야기하는게 실무에서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내 논지는 세 가지이다. 1. 실무에서는 작은 위험의 가능성이라도 피해야 한다. 따라서 굉장히 보수적이고 안전하게 접근해야 한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근로자 본인에게, 동료 근로자들에게, 혹은 고객들에게 위험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업무적합성 평가를 쓰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업무가능 소견을 줄 가능성이 극히 낮아진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말이다. 꼭 항공 조종사 (파일럿), 버스 운전사 같이 승객 다수의 생명을 책임진 직종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산직, 사무직, 현장직이더라도 말이다.
2. 그렇게 공식들을 외워서 계산을 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겠지만, 사실 실무에서는 (1)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의학적 문제, 질병, 상태 등에 대해서 빠삭하게 아는 게 중요하고 (2) 이 환자가 하고 있는 일을 빠삭하게 아는 게 중요하다. (1)과 (2)가 갖추어지면, 업무적합성 평가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작은 위험이라도 가능하다면 업무제한을 하는 게 모두를 위해 나은 판단이다. 환자 자신도 지금 당장이야 일을 하고 싶어하겠지만, 극히 드물게라도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의 가능성을 인지하게 된다면, 아마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3. 마지막으로 work fitness assessment 같은 특정한 단행본을 보는 것보다, 해당 직업병이나 유해인자에 대해 최신 저널들에 실린 연구결과들을 빠삭하게 섭렵하는게, 오히려 정확하고 상세한 업무적합성 평가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특정 단행본에서 정형화 해 놓은 방식으로는 다양한 가능성, 지금도 최신화되고 있는 해당 분야의 연구결과들, 메인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능성들에 대해서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즉, 특정 단행본을 섭렵하고 '난 이 질병의 이 직종에서의 업무적합성평가에 대해서 알아.' 라고 단언하는 것이 굉장히 취약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기본에 더해 최신 연구 결과를 저널로 끊임없이 탐독하고 최신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정확한 업무적합성 평가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것이 정밀업무적합성평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공식으로 줄줄 계산해서 '당신은 이런 일을 하니 하루에 30분까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업무적합성 평가가 현실성이 심각하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가보라. 건설 현장, 제조업 현장 등 현장에 가보라. 어느 누가 그런 식으로 일을 하는가. 회사에서 요구하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일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1.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2. 해당 질병이던 해당 직무던 빠삭하게 아는 게 중요하고, 3. 특정 단행본에서 다루는 방식만이 아니라 최신 저널의 연구 결과들을 골고루 빠짐없이 섭렵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업무적합성 평가에선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