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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Oct 20. 2024

선량한도와 말장난: 승무원과 의료인은 철인 28호인가

연간 누적 허용선량 이하면 무조건 안전한가요?

필자가 환경과 직업에서 노출되는 유해인자 중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게 무엇일까? 바로 방사능이다. 방사능이 정말 위험한 것은 왠만한 방사선량에 노출되어도 사실상 흔적이 당장 남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61223.html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1738


위의 기사들을 보자. 첫 번째 기사에서 "에어프레미아 운항 승무원의 평균 피폭선량은 3.20m㏜(밀리시버트)로 승무원 평균(1.72m㏜)의 두배에 가까웠고, 최대 피폭선량은 5.09m㏜에 달했다. 일반인 연간 유효선량 한도인 1m㏜의 5배일 뿐 아니라, 법에 규정된 항공운송 사업자 관리 기준인 ‘연간 누적 피폭선량 6m㏜’에 근접한 수치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승무원의 연간 허용되는 누적 피폭선량이 6mSv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연간 허용 피폭선량이 1mSv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른 의료 방사선 종사자들의 피폭 선량한도는 유효선량 기준 연간 50mSv 이하, 5년간 누적선량 100mSv 이하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의료인은 1년에 50mSv까지 노출되어도 용인됨을 알 수 있다.


필자도 의료인이지만 필자는 이 기준을 인턴 의사로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부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의료인과 승무원은 무슨 철인 28호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째서 일반인은 1mSv까지만 노출된다고 규정해 놓고, 왜 승무원은 6mSv, 의료인은 50mSv인가. 어차피 DNA와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 아닌가. 필자는 이런 규정들은 해당 사회의 원활한 function과 기능유지를 위해 만들어둔 것이지, 결코 해당 직업인 개개인의 건강을 위해 제정해 놓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저 6mSv와 50mSv 기준이 정말로 엄밀한 의학적, 역학적 근거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말을 바꿔보자. 담배는 널리 알려진 강력한 발암물질이자 유해인자이다. 근데 하루 담배 3가치까지는 안전하니 허용한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말장난 같은 말인가. 3가치만 피워도 폐암 등 각종 암의 발생 확률은 분명히 증가한다. 방사선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노출되어도 방사선의 인체 영향 모델과 각종 대규모 역학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명히 각종 건강위험의 리스크가 올라간다. British Medical Journal, 일명 BMJ라는 국제적으로 최고권위를 인정받는 의학학술지에 2023년 8월과 (암) 3월에 (심혈관질환) 각각 출판된 프랑스의 대규모 역학연구와 체계적문헌고찰/메타분석 논문이다. 적은 용량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오히려 건강에 좋다던가 (hormesis theory) 적은 용량은 영향이 없다는 (no effect) 이론은 잘못되었다.



https://www.bmj.com/content/382/bmj-2022-074520

https://www.bmj.com/content/380/bmj-2022-072924


결국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왜 일반인과 다르게 의료인과 승무원에게는 연간 누적 허용선량을 다르게 적용하는가? 이들은 암이나 다른 건강질환 발생 위험에 더 노출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필자는 직업환경의학을 공부한 이후로는 방사능 노출에 굉장히 민감하다. 조금만 노출이 되어도 문제다. 특히 라돈 같이 폐 내부로 흡입되어 내부피폭으로 폐암 등 발생위험이 매우 커지는 형태의 방사능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직업별 방사능 허용선량에 대한 논의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전자까지 이용한 역학연구를 통해서 방사능 노출 시 암이 발생하기 쉬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승무원이나 진단 방사선 기기를 다루는 의료인, 광부 (라돈 노출), 원자력 발전소 관리인력 등 경미하더라도 방사능 노출을 피하기 어려운 직업에는 진입 자체를 하지 않도록 권유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권유를 해야지 막아버리면 안 된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gene-environment interaction (유전자-환경노출 상호작용) 연구분야이다. 아직 우리 인류는 유전자 정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직업의학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이렇게 gene-occupational exposure 상호작용을 통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승무원과 의료인은 일반인과 다르게 DNA와 단백질이 아니라 철로 구성된 철인 28호가 아니다. 따라서 직업별 방사능 허용선량에 대해 오픈해 놓고 이야기하고, 직업별 연간 누적 허용선량을 더 엄격하게 다시 제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해당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건강 리스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얻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직업환경의학을 배우기 전까지는 용접 작업을 사람들이 왜 회피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공부해보니 용접흄은 폐암과 콩팥암을 일으킬 수 있고, 용접 작업에서 노출되는 자외선은 백내장 등을 조기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용접이 이루어지는 산업현장 자체가 유해인자 노출이 많고 안전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하다. 이런 위험을 오픈된 공간에서 논의하고 종사자들이 이를 정확하게 알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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