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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Sep 18. 2021

 잠 못 이루는 밤 2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각시투구꽃의 밤을 생각한다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고 있을


문성해, ‘각시투구꽃을 생각함' 중에서


 생각이 많아져, 잠을 못 자고 혼자 깨어 있는 밤이 있다. 추석이 다가오면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나고 어떻게 지내나, 보고 싶다. 시월에는 친정아빠 기일이 있고, 생각은 더 많아진다.

 초등 6학년 시절, 늦은 밤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의 시간을 즐겼다. 그 당시 아빠는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 중이셨는데, 종종 새벽에 일어나 나가셨다. 아빠의 핏줄 선 옆얼굴이 생각난다. 밤에 드는 여러 생각에는 아빠 걱정이 많았다.

 중학교 1학년 가을,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종종 가족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하다 잠을 못 이루는 밤은 그래도 뿌듯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또 걱정이 되었고 불안했다. 불안이 지나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가족은 흩어져 살게 되었고, 혼자 두려워했던 밤은 계속되었다. 바다 끝에 있는 마음이었지만 평안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절대자를 만났기에, 그런 힘들었던 밤을 미워하지 않는다.

 결혼 후에는 외국에서의 삶이 외로워 때론 혼자 잠들지 못한 날이 있었다. 일본에서 신혼시절 남편과 크게 다투고 한밤  집을 나왔다. 어디  때가 없어, 아파트  벤치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 때문에 잠을  이루는 날이 줄었다. 육아로 힘든 몸은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랐는지 곯아 떨어져 자는 줄어들었다. 추석아빠 기일을 앞두고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생각이 많아져 잠을  자는 날이 많아 졌다. 몇 해 전부터 그런다.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에는 식구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있는 일을 찾는다. 건조해 쌓아  빨래를 개는 일이다. 생각나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일이다.  시를 필사해본다. 이러다 날이 밝기라도 하면 이른 아침을 만나면 된다.

잠이 안오면 시 필사를 해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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