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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19. 2021

그녀의 주입식 큐피드 교육

내 인생의 참스승

가끔씩 내가 만났던 스승들을 떠올린다.

내가 존경하고 진심된 마음으로 따르던 스승들은 손에 꼽힌다.


1995년 유치원 생활을 시작으로 1997년 초등학생~2008년 고등학 3학년까지. 내가 마주친 스승들 중 좋은 스승들도 많았지만 아직도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부 스승답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수영모를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다며, 겨우 6살이던 나를 물속에  메몰 차게 던져버렸던 이.


초등학교 1학년, 복도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하고, "선생님, 저는 뛰지 않고 화장실이 급해서 빨리 걸었어요."라고 억울함을 토로하자 어른에게 말대꾸한다며 중죄인을 만들며 소리를 지르던 이.


초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헌책으로 교과서를 배급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교과서 배급 시 더러운 헌 책 대신 그 옆의 덜 더러운 책을 골라 집었다는 이유 만으로 내 머리통을 세게 휘갈기던 이.


중학생 때 성적이 떨어진 점수만큼 사정없이 엉덩이를 내려치던 이. (성적이 20점 떨어지면 20대를 맞았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아이가 보충학습을 튀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관한 같은 학급의 아이들을 책상 위에 무릎 꿇게 하고 허벅지를 난타하며 본인의 분노를 풀어대던 이.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친구에게 머리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머리를 때리며 "넌 술집이나 나가 일해라."라는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한 이까지.


그저 나보다 나이만 더 많고 감정적이기만 했던 이들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시의 일부 감정적  체벌 및 폭언, 폭력 등이 객관화되어 떠올라 종종 화가 나기도 했다. 그들은 부모들 앞에선 한없이 인자한 스승의 가면을 쓰곤 했다.


이처럼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스승답지 못한 이들도 일부 있었지만, 다행히도 스승다운 참 교육자들이 더 많았기에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에 속한다 볼 수 있겠다.




그중 단연코 최고의 참 스승은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다.


부임하지 얼마 안 된 앳된 느낌이 가득했던 여자 선생님이었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으로 오히려 초6인 우리들이 지켜주어야 할 것 같이 야리야리해 보였지만, 강단 있는 카리스마와 싱그러운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얼굴이 정말 희었고, 입술에는 항상 연분홍 빛의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었다. 밝은 갈색 염색모에 곱실거리는 중간 단발 기장의 파마머리를 항상 하나로 묶고 다니던 그녀는 아름다웠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그녀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초등학 6년 차드디어 젊은 여자 선생님이 내 담임 선생님이 되다니! 당시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은 젊은 여자 선생님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윽박지르고, 혼내기만 하는 무서운 스승이 아닌, 언니같이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혼내지도 않는 스승을 바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여자 선생님이라고 다 언니같이 살가운 것도 아닐 텐데 어린 시절 아이들만의 근거 없는 환상이었다.




우리의 스승은 항상 한 명 한 명의 눈동자를 지긋이 응시하며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곤 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느 스승보다 가장 친절했고 진심이 느껴졌다.


학기 초반, 그녀는 우리를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 반은 이제부터 큐피드 반이야.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인지 아니? 너희는 다 천사야."

세상에, 우리는 1학년 아기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곧 중학생이 될 6학년들이었는데 이런 우리에게 큐피드며 천사라니? 우린 여드름도 날 언니 오빠들인걸? 닭살이 송골송골 올라올만한 오그라드는 대사에 아이들은 한껏 까불어대며 "우웩!" "웩!" 거렸다. 대부분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며, 다소 어른 행세를 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기에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아이들의 우웩 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의 '주입식 큐피드 교육'은 철저하게 실시되었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자면 우리는 큐피드 즉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 때문에 친구에게 욕을 해서도, 괴롭혀서도, 물건을 훔쳐서도, 질서를 지키지 않아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어서도 안 되었다. 친구가 힘든 상황이면 도와줘야 하고, 서로의 부끄러운 비밀은 꼭 지켜줘야 했다. 천사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의를 베푸니까.


지금까지는 '선생님한테 혼나면 안 되니까 욕하면 안 돼.',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으니까 질서 지켜야 돼.'라는 생각에 강압적 지키면서도 가끔씩 반항심을 갖던 규정들이 '우리는 큐피드니까, 천사니까.'라는 명목 하에 지켜지기 시작했다.


학기 초반의 교실은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목청 높여 허세를 부리고, 강해 보이기 위해 욕을 는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실 안의 누구도 욕을 사용하지 않았고, 새치기를 하지 않았고, 서로를 괴롭히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당시 우리 반에는 등, 하교 시에만 잠시 교실에 들른 후 특수반에서 대부분의 수업을 듣던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었다.


학기 초반 학교에서 짱 놀이를 하던 일부 남자아이들은 "이 병신."이라며 주먹을 들이미는 시늉을 더해 적대심을 표출하곤 했다. 그 외의 아이들도 괴롭히는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그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따로 하진 않았다. 그저 혼자 둬도 괜찮은 아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큐피드 수장인 그녀는 어느 날 앞으론 그 아이가 특수반에 수업을 들으러 오갈 때 우리 큐피드들이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큐피드들 중 혼자만 다른 곳에서 수업을 듣고 오면 마음이 힘들 것이라며 요일별로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러 가고, 오는 길을 외롭지 않도록 채워주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떨떠름하게 반응하며 그 아이의 뒤를 어색하게 쫓아다니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본인의 순서가 아님에도 멀리서 그 아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우르르 복도로 몰려가 환영해 주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를 병신이라고 부르던 일부 남자아이들이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하게 임했다. '병신'이라는 용어는 어느 순간부터 '야, 인마'로 살짝 순화되는 듯하다가 2학기에는 'OO야'라는 다정한 말로 바뀌었다. 그 아이를 놀리는 다른 반 애들에게 쫓아가 "얘 놀리면 죽인다."라는 다소 큐피드스럽진 않지만 사이다스러운 의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천사 같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한번 크게 혼쭐이 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반은 6학년답게 학교의 가장 꼭대기 층인 4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가 내 신발주머니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더니 깔깔 대며 운동장을 누비고 있었다. 쫓아올 테면 쫓아와 보라며 메롱 거리기도 했다. 내 신발을 운동장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려두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재빠른 그 아이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4층 복도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 아이의 행태를 살폈다. 그러자 나를 따라 친한 여자아이 2명이 함께 매달렸다.


"야! 신발 내놔!!"

우리는 세명이 연달아 창문에 매달려 소리치며 꽥꽥 악을 썼다.


그때였다.


"박 OO!!!!!!"

항상 어진 표정과 말투,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만을 내던 큐피드 수장인 그녀가 포효하는 소리를 내며 잽싸게 달려왔다. 우리는 달려오는 그녀를 바라본 채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린 채 창문에 반쯤 매달려있었다.


그녀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려는지 심 호흡을 했고 차가운 어조로 "당장 내려와."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며 창문에서 내려왔다. 평소 천사 같은 모습으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그녀였기에, 그녀를 화나게 한 난 정말 최악의 어린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우리들 또한 덩달아 끄억 거리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너희가 다치기라도 할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사랑하 너희가 다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위험한 장난 하지 마 특히 창문에는 절대 매달리지 마."

그녀는 잠시 감정을 진정시키는 듯하더니 차분한 어조로 우리를 달랬다.


"엉엉. 끄억. 절대 창문에 안 매달릴게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어른들이 반성하라고 윽박지를 땐 죽어도 안 나오던 말이었는데, 그녀의 따듯한 한마디에 죄송하단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신발 훔쳐간 그 녀석에 대한 고자질을 했고, 큐피드 수장과 어린 큐피드들은 울다가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당시 나이는 스물다섯 혹은 스물여섯이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 그리고 밝은 아이 어두운 아이에게 모두 똑같은 미소를 띠고 일관된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던 그녀는 교사생활을 시작 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가 만난 스승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스승이었다.


당시 그녀의 교육법이 학문적으로 옳고 그른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사춘기를 맞기 시작한 40여 명의 아이들이 따듯한 심리상태를 가진 천사로 1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푸는 기쁨을 선물 주었음에는 확실하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큐피드 수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잊지 못한다.

당시 큐피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착한 행동을 찾아 하던, 순수했던 제자가 좀 많이 탁해진 어른이 된 걸 알면 충격받으실까.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 세상 큐피드 들을 발굴해 내고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참스승이자, 큐피드 수장이었던 그녀가 가끔씩 떠오르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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