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친 후의 변화
행신동 집에 사는 동안 요가와 수영을 배웠고, 유럽을 여행했으며, 유기견 임시보호를 했다. 요가, 수영, 여행, 임시보호는 누군가에게 대단치 않은 일이겠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두려웠고, 해본 적 없는 일을 혼자 하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멋진 요가복을 입은 기존 수강생들 사이에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메뚜기 자세와 코브라 자세를 배웠다. 처음 입어보는 선수용 수영복에 멋쩍어하면서도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그 전까지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 없었지만 유럽에서 석 달 동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유럽을 다녀온 뒤에는 유기견 임시보호를 시작했다. 동물단체가 구조한 유기견들을 입양 가기 전까지 집 에서 임시로 돌봐주는 일이었다. 그것은 피피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가 늘 하고 싶었으나 실천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 집에서 처음 했던 또 다른 일은 예전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다섯 살 아래의 범준이라는 후배에게 사귀자고 말한 것이었다.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때까지 기다렸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관계에 소극적이던 내가 범준에게 먼저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자에게 의존적이었던 이전과 달리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여도 괜찮았으므로 거절당해도 괜찮았다.
혼자 무언가를 배우고 혼자 낯선 나라에서 지내고 혼자 유기견을 돌보면서,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전히 처음 하는 일들이 두려웠지만 두려움 때문에 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변화는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일을 해냈던 날, 행신동 집을 고치던 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지 못했다면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범준과 연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랑 결혼할래? ”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만 취해 있지 않았다. 범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범준과 함께라면 오랫동안 소망했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에게 기꺼이 영향받고 동시에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존재하는 관계를. 자유롭다는 것은 나의 의지나 노력만이 아니라 나와 상대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가능해진다. 그와의 결혼이 타협, 해결, 목표, 희생, 의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나오는 문장처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홀로 있을 때만큼이나 자유롭고 여럿이 있을 때만큼 즐겁”기를 바랐다. 열정적인 사랑이나 낭만적인 결혼이 아니라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그와 함께,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두 사람이 함께, 서로의 삶을 살고 싶었다.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상으로서의 결혼”(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