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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구름이다

by 감사렌즈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햄릿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생각주머니를 멈추고 싶다. 주방 서랍장을 열어보니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떨어졌다. '다른 일 하다가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꼭 사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주방 옆 메모지를 꺼내 필요한 물품을 적는다. 적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가벼워졌다.


'오늘 모임이 몇 시더라? 그 시간에 나가려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몇 시부터 준비해야 하지? 10시 전에 아이들 등원할 수 있겠지? 또 오늘 중요한 일이 뭐였더라…' 생각이 꼬리를 문다. 멈추지 않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을 틀어본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가 흘러나온다. 노래를 들으니 20살 때 친한 친구와 여의도 공원에서 봄날을 만끽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벚꽃 사이를 걷던 그 순간이 참 좋았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질수록 숨이 가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생각은 계속 오고 가지만, 그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2020년 10월부터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10분 명상을 시작했다.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이 떠오르면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정리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면 아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내 모습, 알지 못했던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터졌고, 두통이 찾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괜찮아졌다. 호흡도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생각과 감정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과거의 기억 속에 맴돌던 마음이 정리되자, 현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 폴짝폴짝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과거의 시간을 인정하고 풀지 못한 감정을 받아들이니,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명상을 해도 때때로 생각이 휘몰아치지만,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이다'라고 되뇌면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진다.



새벽 6시, 아파트 계단 오르기 운동 중이었다. 17층까지 올라가는 중에 회색 바닥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혹시 바퀴벌레가 날아서 내 몸에 닿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바퀴벌레를 자극하지 않으려 살금살금 계단 옆으로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무사히 22층까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과 15층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1층 버튼을 눌렀다.


어린 시절 주택가에서 혼자 잠을 자던 어느 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불을 켰다가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의 공포가 생생해서, 바퀴벌레만 보면 여전히 살에 소름이 돋는다. 15층에서 다시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떨리고 심장소리가 천둥처럼 커졌다. 17층에 도착했을 때 건물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불안을 참아내며 앞만 보고 올라갔다. 그런데 문 옆에 가만히 있는 바퀴벌레를 보니, 아까의 두려움이 무색해졌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네… 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22층에 도착해서는 고민 없이 1층 버튼을 눌렀다. 심장소리도 전보다 훨씬 잦아들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가 없었다.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니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졌다. 생각은 그저 지나가는 구름 같은 것. 그걸 놓아줄 때 비로소 진짜 평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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