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상대의 불친절함을 일방적으로 받아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 거의 없다고 본다. 받아주진 못해도 참을 수는 있겠지. 어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러려니 넘어간다. 나 하나 참고 말지 하는 생각이 기본이라, 때론 나는 남들에게 호구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나도 화를 낸다. 예를 들어 새치기당했을 때 참지 않고 새치기한 사람에게 버럭 한다. 새치기 자체가 내 시간을 완전히 뺏는 느낌이다. 내가 양보하면 양보했지 내 시간 들여 기다리는 행위가 강제로 남에게 뺏기는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므로 이럴 땐 “제가 먼저 왔는데요?” 혹은 “지금 뭐 하시는 거죠?”라고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 한다.
평소 참는 게 일상인 나는 그저 고구마튀김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타인의 작은 친절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달았다.
한층 더워진 날씨에도 나처럼 가을옷을 입은 사람들이 꽤 보여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타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볼 일을 마친 후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고구마튀김이 지난번에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어서 난 오직 그것만 사서 재빨리 나올 생각이었다.
막 들어선 매장 안은 분위기가 이상했다. 왠지 문을 잘못 연 느낌에 그대로 돌아설까 했지만, 매장 내 다른 손님들이 시킨 메뉴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괜찮겠지라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괜찮은 건 없었다. 내 앞에 있는 남자와 카운터 직원 간에 어떤 언쟁이 있어 보였는데 결제 수단 문제인 듯했다. 카운터 직원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남자와 카운터 직원의 냉랭한 분위기로 인해 픽업존 앞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도 눈치 보았다.
그러나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카운터 앞에서 말없이 기다렸다. 언쟁을 벌였던 남자가 영수증을 받고 자리를 떠난 지 몇 분 흘렀음에도 카운터 직원은 날 거들떠보지 않았다. 매장주문과 배달주문이 밀려있는 게 손님인 내 눈에도 훤히 보였기에 바쁘구나 싶었다. 하지만 주문하기 위해 멀뚱히 서있자니 난 마치 매장 안 공기가 된 기분이었다. 슬슬 먼저 말을 꺼낼까 싶을 찰나에 카운터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드디어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구마튀김 두 개 주세요!
“고구마튀김은 품절됐어요. 고객님...”
이럴 수가. 거의 오 분은 기다렸는데.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주문을 기다리던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내게 돌아온 대답은 ‘품절’ 단 한 단어라니.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카운터 직원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아, 예.”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그대로 매장을 빠져나왔다. 햇빛을 잔뜩 받으며 걸어도 가라앉은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고, 방금 날 마주한 직원의 지친 표정이 나를 점점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저기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람 앞에 세워놓고 뭐 하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뺨 맞고 왜 저한테 화풀이시냐고요?!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더운 날엔 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만약 내가 뭐라도 한 마디 했다면 카운터 직원은 안 그래도 고된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될 것이고 난 소리 지르는 진상이 됐을 것이다. (직원의 모습은 마치 한 여름 밑에서 일에 찌든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러려니 넘어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운 속을 식히고 싶었던 나는 하염없이 걷다가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 드릴까요?”
순간 난 울컥했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내 귀에 쏙 박혔다. 생각지도 못하게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것처럼 상처받은 내 마음을 누군가의 목소리가 치료해주는 듯 했다. 그것도 단 십 분만에. 연고가 부드럽게 발라진 마음을 다독이며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매장 안은 분주했다. 테이블마다 손님이 있었고 보내야 할 배달 포장은 쌓여있었다. 햄버거 가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카페 직원들은 주문을 받고 내가 매장을 떠날 때까지 친절했다. 덕분에 나도 매장을 나갈 때 자연스레 웃으며 인사했다. 마치 상처받은 적 없던 것처럼. 덕분에 나는 잠깐의 불쾌감 때문에 그날 하루를 망치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타인의 작은 친절이 어떤 이의 하루를 결정짓기도 한다. 남에게 친절해서 나쁠 건 없다. 물론, 과하면 안 겠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약간의 노력을 하면 우리는 서로 훨씬 더 잘 지낼 수있다.
최근 길 묻는 사람에게 휴대폰 지도를 보며 같이 길 찾아주고, 지하철 우대승차권 발권을 헤매는 할머니를 도와주고, ATM기 사용을 힘들어하는 아주머니를 도와준 이런 나의 별 것 아닌 행동들이 돌고 돌아 오늘의 나를 위해 도움을 준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니 햄버거 가게의 그 직원도 오늘은 수많은 근무일 중 운수 나쁜 날이었을 뿐이라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직원도 친절한 사람을 만나길 조금이나마 바란다. 그러면 오늘 영 별로라고 단정 지을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