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여름 어느날 갑자기. 아이의 내면에서 차곡차곡 쌓여있던 오만가지 불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집에서조차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아이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도대체 왜 그런거지. 아무리 태옆을 감아보아도 원인이라고는 그 때 그 일밖에 없었다. 그 한 번의 일 때문에 아이는 유치원 현관에서 안들어간다고 울고, 집에 와서도 내일 유치원 가는 것을 걱정하며 징징대고, 피아노 학원 문 앞에서도 실랑이를 해야했다. 엄마가 데릴러 오지 않을까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버릴까봐 걱정이라고도 했다. 아이에게 그 일은 처음 겪었던 두려움이었다.
아이는 도전하길 좋아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아파트 앞동에 사시는 할머니가 아이 혼자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혼자 가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잘 가는지 보려고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아이가 1층 현관밖으로 나오질 않아 슬슬 걱정이 되었다. 동생을 챙겨 내려갔을 때 아이는 패닉이 되어 울고 있었다. 1층 출입문 현관이 아이의 키를 인식하지 못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움츠러들었고 혼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아이는 늘 눈물바람이었고 그런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길을 나서는게 영 마음이 쓰였다. 선생님이 토닥거려 유치원으로 데리고 들어가도 방과후 교실이나 영어수업처럼 교실이 바뀔 때면 다시 눈물바람으로 선생님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일이 잦았다.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휴직을 하고 아이가 원하는만큼 옆에 있어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학교 교사로서 학기중에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아지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안절부절 못한 아이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그동안 학부모들에게 추천했던 소아정신과에 예약했다.
나는 초등교사이다. 1학년 담임만 여러해 하면서 분리불안 아이를 여러명 봤다. 교실 안에 들어오기조차 힘들어 우는 아이들, 수업 중에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보며 '무엇이 저 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힘들게 하는가.' 안타까웠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의 영유아기를 되돌아보고 부모의 양육태도를 들어보면 아이의 불안은 아이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나를 되돌아볼 차례였다. 나는 이 아이에게 평온한 안정과 충분한 애정을 주었나. 집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었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기에는 가슴 한켠이 불편하다. 아이는 늘 엄마를 갈구하고 있었다. 어떨 땐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책을 읽어주기를 바랬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함께 하고 싶어했다. 인형놀이를 해주는 날은 너무나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쟤는 6살이나 됐는데 왜 혼자 놀지 못하고 엄마를 힘들게할까. 학교에서 이미 진이 빠져 집에 온 나는 없는 기운을 끌어 모으며 힘겨워했다.
다들 그러면서 사는줄 알았다. 요즘 워킹맘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데 불현듯 나는 그 와중에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해오던 아이가 이젠 자기 좀 봐달라고 우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울 땐 나도 눈물이 났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다보니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6살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너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