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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24. 2021

1. 어떤 치료

 "그러니까, 병이라는 건 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일 뿐이죠." 의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벌써 삼십 분 째였다.

 "병이 없어도 아플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병이 있어도 도무지 아픔 같은 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통증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엔 그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초콜릿을 계속해서 집어먹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별 일이 아니겠거니 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도중에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어떨 땐 심장이 펄떡거리는 것이 가슴 뿐만 아니라 손목과 관자놀이를 통해 느껴질 정도였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게 되어 결국 나는 의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통증이라는 것은 결국 몸이 보내는 신호인 셈입니다. 그런데 몸에는 기능장애 뿐만 아니라 유기적 결합에서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장기나 근육, 혈관 같은 것들이 전부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병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죠. 멀쩡한 기계의 플러그를 마찬가지로 멀쩡한 콘센트에 끼우는데도 터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내 통증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가슴에 통증이 심해 숨을 쉬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부정맥이라 확신하는 환자들도 결국은 정신과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의사는 쓰고 있던 알이 작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더불어,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는 통증 같은 건 하나 없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상징후라곤 없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잠을 잘 수가 없어 뜬눈으로 새는 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겠습니까?" 의사는 설명을 포기한 듯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통증이 곧 병인 것도 아니지만, 병이 있으면 꼭 통증이 수반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을 위해 의사는 같은 이야기를 삼십 분 동안이나 했던 것이다. 그의 말처럼 통증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병이라는 건 이미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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