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생활은 내밀기보다 받아들이는 일상
말을 세치 혀로 내뱉는 건 참 쉽다. 그렇지만 두 귀로 잘 듣는 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차를 말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찻자리에서 팽주는 정성을 다해 낸 차를 낸다. 팽주가 차를 내면 고맙게 받아 마시면 되는데 말로 내뱉는 사람이 있다.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차가 싱거울 수 있다. 반면에 단맛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쓴 차일 수 있다. 차는 한 가지를 마시는데 '달다 쓰다' 각자 말을 다르게 한다.
쓰고 단맛이 함께 있는 차를 마시는데 어떻게 한 가지 맛에 집착하면 되겠는가? 쓴맛은 좋아하는 사람은 단맛에 민감하고, 단맛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은 쓴맛을 먼저 느끼게 된다. 쓴맛이 너무 과한 차는 사람을 가리고, 단맛이 좋다고 하는 차는 훗날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한다.
차는 쓴맛을 바탕으로 하며 단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 뒤를 다툰다. 쓴맛 앞에 나오는 단맛은 잠깐 머물지만 뒤를 따르면 오래 몸에 스민다. 단맛만 좋은 차보다 쓴맛이 좋아야 상품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모름지기 찻자리에서는 팽주의 마음을 받아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에 따라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하물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함부로 옳고 그름을 가려 말하는 건 찻자리의 예가 아니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 잘 듣는 사람이 차맛을 온전히 음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팽주는 차를 내면서 차맛이 좋다는 말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표정을 보면서 다음 차를 준비할 것이다.
그래서 찻자리에 앉는 태도는 상선약수의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