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란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갈증이 마음속 깊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번뜩하는 소재는 생각나지 않았고 일상은 일상대로 흘러갔다. 그러던 찰나 코로나19의 등장과 함께 내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순간이 생겼다. 휴일에는 주로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글을 썼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카페 안 좌석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시기였다. 그렇다고 7평 남짓한 조그만 원룸에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방 안에 빨래라도 널어놓는 날이면 책상과 침대 사이 공간을 건조대가 차지해서 침대 위에만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회사도 정부 정책에 따라 재택근무로 변경되면서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온몸이 다 뻐근할 지경이었다.
자유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질 무렵 스터디 카페를 추천받았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고3 때 이용했던 적막하고 캄캄한 독서실 같은 곳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여러 분위기의 스터디 카페가 있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스터디 카페,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형 스터디 카페 등 독서실과는 달리 신세계였다. 결제하고 자리를 이용하니 오래 있다고 해서 눈치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무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회사 재택근무도 글을 쓰는 것도 스터디 카페를 참 많이 이용했다. 다른 사람들도 집에만 있기에는 답답했던 건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좌석이 없을 정도로 이용자가 많았다.
혼자 가서 1인 책상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스터디 룸에서 여러 명이 함께 이용을 할 수도 있었다. 사실 그 시기쯤 사내연애를 하고 있어서 스터디룸에서 함께 근무하면 업무 효율이 아주 좋았다. 자취방에서 혼자 일하는 것보다 나태해지지도 않았고 남자 친구가 회사 선배이기도 해서 막히는 부분을 바로바로 질문할 수 있었다. 업무가 끝나면 비치되어 있는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리만의 의미 있는 공간이 되어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스터디 카페에 앉아 타닥타닥 노트북을 두드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용기로 그런 생각을 했나 싶긴 하다.
한 번 사는 인생 직장인으로만 살기엔 아쉬운데, 이참에 사장님 한 번 해볼까?
사업을 전혀 해본 적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 하나 없으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즉흥적으로 끌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했고, 휴학 한번 없이 토익이며 공모전이며 각종 스펙을 쌓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을 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바로 취업한 나에게 평범한 삶의 틀을 깨부술 수 있는 계기였다. 게다가 스물여덟에 직장을 다니며 창업하는 과정을 책으로 쓰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을 쓰기 위해 대뜸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다들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 순간 그냥 미친 선택을 하고 싶었다. 드디어 책으로 쓰고 싶은 소재가 생기자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흥분되었다.
언젠가 사주 선생님께서 내 사주 풀이를 하더니 큰 땅에 호랑이 기운을 품은 대장부의 사주라고 말해주었다. 사주풀이대로 마음속 깊은 곳에는 큰 포부가 숨어있었던 건지 따라오는 걱정들은 무시한 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무엇보다 퇴사할 용기의 반만있어도 투잡은 겁 없이 도전해 볼 만했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월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망했을 때 일단 월급으로 메우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진짜 망했다면 이런 속 편한 소리는 못했을 거지만 말이다.
결정적으로 머릿속에만 떠다니던 창업에 대한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불을 지펴준 건 그 해 연봉협상 덕분이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장애 상황에 얼굴도 모르는 고객들한테 눈물 나기 직전까지 욕을 먹었다. 게다가 어깨 통증과 두통을 달고 살 정도로 열심히 모니터만 보고 일했지만 인상률은 정말 형편없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일 한 건 충분히 알지만, 회사 사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네요."
회사 사정보다 내 주머니 사정은 더 안 좋았다. 주변 식당의 밥 값도 오르고, 카페의 커피 가격도 오르고, 택시비도 오르고 다 오르는데 월급만 안 오르면 어떻게 먹고살라는 건가. 거기다 비싼 서울에서 집세까지 내고 나면 회사를 다닐수록 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분노의 연봉 통보를 받은 날 퇴근 후 치과에 가게 되었다. 예상 금액을 들었는데, 연봉 인상률보다 치과 치료비가 더 비쌌을 때 창업에 대한 열정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나는 지금보다 더 열정을 쏟을 순 없었고, 회사는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면 이제 나만의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