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나'의 첫 부캐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블로거’였다. 원래는 먹고 놀고 평범한 일상일 뿐이었는데, 흔한 일상도 글이 되고 나니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생활하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글감이었다.
나의 MBTI는 ENFJ인데 마지막 J가 계획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다이어리에 적은 계획을 해냈을 때 그리는 동그라미가 뿌듯했다. 그렇다 보니 일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많이 실망하곤 했다. 가려고 했던 맛집이 문을 닫았다거나, 물놀이를 갔는데 날씨가 좋지 않으면 하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글로 적는 것이 즐거웠다.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른 카페의 바닐라 라떼가 맛있었던 것도,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은 맛집 옆 알려지지 않은 식당의 음식이 맛있다는 것도 블로그에 올리며 새로운 추억으로 남겼다. 다이어리의 할 일 목록에 동그라미는 치지 못했어도, 원래의 계획 옆에 더 즐거웠던 기억을 적었다. 어느 날은 비에 흠뻑 젖은 웃긴 모습을 찍고 있으니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는 거야? 언니한테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것 같아.”
정말 그랬다. 어느 순간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꾸준히 운영하다 보니 취미로 시작한 내 공간에 수익도 나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룬 결과는 아니었다. 모든 사진과 글에 나만의 감성을 채워 넣었다.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포스팅하니 여러 제의도 오기 시작했다. 협찬을 받아 맛집도 가고, 신간 서적을 받아 서평도 하고, 여러 체험들도 즐길 수 있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함인 듯하다.
생각보다 꽤 많은 작업이 필요해서 즐기지 않으면 오래가기는 어렵다. 친구들은 매일같이 사진 찍고 글을 쓰는 게 귀찮지도 않냐며 혀를 내둘렀다. 나에게는 블로그가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어디든 갈 때마다 사진 촬영을 하고 방문한 곳의 정보와 에피소드를 메모해 두었다. 휴대전화 메모장은 하루를 두서없이 메모해 둔 글로 넘쳐났다. 집에 돌아오면 사진을 편집하고 글을 정리했다. 배울 점이 많은 다른 블로그와 이웃을 맺고 서로 소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직장인 나’는 글을 쓰며 수익을 내는 ‘블로거’로 새로운 부캐 활동을 시작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취미가 돈이 되니 더욱 열정이 생겼다. 결국 자본주의의 노예인가 싶다가도 돈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월급쟁이에게 부가 수입은 금액이 많지 않아도 짜릿했다. 처음 블로그 수익으로 5만 원을 정산받았을 때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수익이 적힌 화면을 캡처까지 해서 저장해 두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글을 작성하면 수익이 생긴다니 나한테는 1석 3조의 활동이었다.
몇 년간 꾸준히 많은 체험을 하고 포스팅을 했다. 작성한 글은 1000개가 넘었고, 하루 방문자는 2천 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성장했다. 블로거에게 이런 기회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신선한 활동들도 참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하나 있다. 여수시에서 새로운 관광 행사 전 미리 체험해 보고 홍보 글을 작성하는 활동이었다. 요트, 윈드서핑, 카누, 카약, 스쿠버다이빙, 패들 등 종류도 다양하고 전문가한테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창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팔팔한 이십 대 초반이었다. 특히, 수상 액티비티를 좋아해서 동남아 여행에 푹 빠져있던 시기였다. 여행을 가면 물고기가 보일 정도의 투명한 바다 위에서 멋진 자세로 패들보드를 타는 로망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패들 수업을 선택했다.
수업 첫날. 내 몸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패들보드를 낑낑대며 파도 위에 올렸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보드를 질질 끌고 온 자국이 모래사장에 움푹 파인 채 남아있었다. 아직 보드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파도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겨우 보드 위에 몸을 걸치듯이 올렸지만, 멋지게 일어나기는커녕 보드 위에 바짝 엎드려서 앉아있지도 못했다. 한 번 일어서 보려고 패들에 손을 짚고 무릎을 펴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옆에서 계속 개다리 춤을 추고 있으니 친구는 웃겨 죽으려고 했다. 그래도 점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잡아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양팔을 허리 위에 얹고 멋지게 서서 노을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황금빛으로 물이든 바다 위 패들보드를 타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싶기도 했다. 모든 경험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해서 글에도 그대로 묻어났다. 정성 가득한 원고를 보고 업체에서 추가 원고료를 지급하기도 했고 글을 보는 사람들 반응도 점점 좋아졌다.
글을 쓴다는 것에 두근거렸다. 나는 글을 쓰는 게 너무 좋았고 사람들도 내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내 일상을 올리는 것도, 업체에서 제안받으면 새로운 글을 쓰는 것도 참 좋았다. 그런데 아직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신선한 이야기를 내 책 한 권에 담아보고 싶은 그런 갈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