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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Jan 31. 2022

[Lv.5]창업을 위한 운명의 상가를 만나다.

 집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건대입구역 부근 부동산만 돌아다닌 지 한 달가량 지났을 때였다. 우연히 사장님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거주지와 멀면 관리가 쉽지 않다는 글을 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부분을 참 늦게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스터디 카페를 운영 중인 사장님의 글이었는데 갑자기 변기가 막혔다거나 누군가 음료를 쏟고 가버리는 돌발상황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게다가 항상 청결한 매장을 유지하려면 수시로 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건대입구역 근처는 아무리 이곳저곳 돌아다녀도 마음에 쏙 드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살고 있는 곳 근처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다잡고 집 근처 부동산 투어를 나선 날, 이 동네 부동산들은 일요일에 죄다 휴무가 아닌가. 아무리 이 골목 저 골목 뒤져도 문이 잠긴 부동산 뿐이었다. 게다가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내 마음 같은지 비를 잔뜩 머금은 새카만 먹구름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곧 비라도 쏟아질까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불이 켜진 부동산 하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씩씩한 등장 때문이었는지 부부로 보이는 두 사장님께서는 화들짝 놀란 듯했다.


 "안녕하세요, 스터디 카페 운영을 위한 상가를 찾고 있습니다. 평수는 30평대 정도로 보증금은 3000만 원 정도 가능합니다. 매물이 있을까요?"


 "오? 마침 바로 뒤에 딱 맞는 상가가 있어요."


 소개해준 상가는 정말 부동산 바로 뒤 30초 거리에 있었다. 역과는 도보 1분 거리로 초역세권이었다. 심지어 가격에서 완벽한 합격이었는데,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20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120만 원도 건대 입구역 시세에 비하면 반 값이었는데 건물주 분께서 스터디 카페가 자리 잡는 1년 동안 월세는 100만 원으로 유지해 준다고 하셨다. 공간을 둘러보니 본 공간 약 30평, 주차장 10평, 창고로 사용 가능한 공간 8평이었다. 더 둘러볼 필요도 없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운명적인 상가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는 사장님은 오랜 기간 부동산을 운영하셔서 동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계셨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들은 이야기가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되었다.


 "보통 학교는 후문보다 정문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지금 상가는 애매하게 A대학교 후문 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여기 주변에는 스터디 카페가 없어요. 다들 후문은 사업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A대 정문과 그 근처가 전부 재개발 중이라 학생들이 이제 막 후문으로 자취방을 구하고 있고 유동인구도 많아지는 시점이에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사장님 말씀대로 기존에 운영 중인 스터디 카페가 하나도 없는 애매한 위치였는데, 유동인구가 계속 늘어났고 주변에 자취하는 학생들도 점점 많아졌다. 부동산 사장님 말씀처럼 후문이 활성화되니 광고 한 번 없이 자연스럽게 회원수가 늘어갔다. 게다가 계약하는 날 이건 운명이라는 확신이 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도 원래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데, 가게에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잠깐 불을 켰다가 손님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심지어 딱 괜찮은 매물이 나왔는데 조건이 맞는 거 보니 인연인가 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리가 후들거리게 돌아다닌 끝에 상가를 계약했다. 한눈에 반해버린 곳이라 더 뜻깊었다. 아직은 텅 비어있는 공간이 어떻게 채워질지 두근거렸다. 어릴 적 새로 산 스케치북의 첫 장을 펼친 기분이 들었다.


 '새하얀 스케치북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크레파스로 그릴까? 하늘색 색연필로 그릴까?'


 사회에 찌들어있던 직장인의 머릿속이 정말 오랜만에 알록달록한 상상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직장인', '블로거 부캐'에서 '사장님 부캐'라는 새로운 부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부캐'는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앞으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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