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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Jan 29. 2022

[Lv.4]현타 오는 부동산 발품 팔기.

 "직장인으로만 사는 건 평생 일개미 같은 삶일 뿐이야."


 그렇게 일밖에 모르던 두 명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인 사업에 대해 굉장히 쉽게 생각했었다. 청소 정도만 해주면 알아서 굴러가는 줄 알았다. 무인은 말 그대로 관리자가 없는 곳이 아닌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둘이 자주 다녔던 스터디 카페가 건대 입구라는 이유로 그 주변의 부동산부터 돌기 시작했다. 둘 다 집에서 1시간 이상 거리인데도 말이다. 그저 우리의 추억이 담긴 장소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 없던 시작이었다.


 문제는 활활 타오르는 열정에 비해 통장 잔액은 썰렁하다 못해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보통은 사업 예산을 들으면 겁먹고 포기해 버리겠지만 둘이서 영혼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아이디어 창업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은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았다. 콧물이 줄줄 나오고 손이 얼어붙어 깨질 것 같던 추운 겨울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인지 부동산을 가는 날마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롱 패딩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리고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맨 채 마음에 드는 상가를 찾아다녔다.


 "둘이서 원룸을 구하는 게 아니라 상가를 구한다고요? 지금 예산에서는 좋은 매물 보기 힘들어요."


 어려 보이는 둘이서 사업할 상가를 구하는 것에 부정적인 중개업자 반응이 많았다. 예산을 말하면 그 가격에 지하 아니면 어떻게 매물이 있겠냐며 면박을 주었다. 우리보다 훨씬 돈이 많아 보이는 어른 손님이 오면 관심은 대놓고 그들에게 쏠렸다. 그래도 어딘가 남는 상가 하나쯤 있을 거라고 행복 회로를 돌렸다. 어느 날은 우연히 인연이 닿은 젊은 중개사 분과 건대입구역 매물들을 보게 있었다. 취업 준비 기간에 스터디 카페를 많이 이용해 보셨고, 직접 카페 창업도 해 본 경험이 많은 중개사였다. 단순히 매물 소개만이 아닌 다양한 꿀팁들을 보따리장수처럼 풀어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만난 첫 번째 귀인이었다.


 이 중개사님은 각 상가의 특성, 지리적 장점, 건물주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는 건물주가 욕심쟁이 할아버지라 피해야 한다거나, 재개발 구역으로 주위에 공사가 시작되면 스터디 카페 운영 중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실질적으로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들도 배웠다. '렌트프리'라는 상가 계약 시 월세를 내지 않고 공사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는 점과 냉난방기가 있는 곳은 인테리어 견적에서 1000만 원 정도 절약이 가능하다는 유익한 정보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알게 해 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많이 듣고 직접 눈으로 보며 우리도 상가를 정하는 기준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주 동안이나 건대 입구 주위를 발품 팔았는데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 같은 시세였다. 직장인의 소중한 주말이 별다른 소득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수가 작으면 좌석 수가 한정되어 수익을 낼 수 없고, 평수가 크면 월세와 인테리어비가 감당이 안되니 출구 없는 딜레마에 허덕였다.


 하루는 중개사 분 소개로 정말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했다. 기존 학원 건물로 이미 깔끔하게 리모델링이 되어있었다. 내부만 해도 40평이 넘는 큰 평수였는데 큰 강의실 한 개와 작은 강의실 두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큰 강의실 옆 문을 열고 나가면 테이블 10개는 거뜬히 놓을 수 있을 듯한 규모의 야외 테라스가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공부하다 지칠 때 선선한 바람을 쐬며 쉴 수 있는 야외 휴게존이 있다면 다른 스터디 카페와도 차별화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대입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위치, 보증금 2000에 월세 200이라는 가격까지 완벽한 운명의 상가였다. 게다가 복도 맞은편에 작은 방이 하나 더 남아있었는데 사무실로 이용해도 된다고 했다. 이 정도면 건물주가 천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계약 날짜까지 잡고 들뜬 마음으로 인테리어 구상을 하던 어느 날, 중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에도 매물 때문에 통화를 자주 했는데 그날은 휴대폰에 중개사님이 뜨자마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촉이란 생각보다 더 잘 맞아떨어졌다.


 "건물주 분께서 고민하시다 아래층이 아동센터로 안전을 위해 24시간 건물 개방이 어렵다고 하시네요. 정말 안타깝게도 여기는 계약이 안될 것 같습니다."


 스터디 카페 24시간 운영 불가는 너무 치명적이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가 직접 건물 마감을 하고 자정까지만 운영하겠다고 이야기해 봤지만, 건물은 오후 9시에 닫겠다는 확고한 답만이 왔다. 계약을 앞두고 드디어 사업 시작이구나 들떠있던 우리는 전화 한 통에 힘 빠지고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상상 속에서는 예쁜 인테리어를 끝내고 두둑한 첫 수입으로 회식하는 미래까지 다녀왔는데 너무 속상했다. 역시 사업은 쉽지 않은 거구나 포기하고 싶어졌다. 사실 너무 막막해서 차라리 부동산 계약 전에 그만하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적어도 손해는 없으니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 이런 마음을 먹은 것도 대단한 일이라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남자 친구의 말에 다시 한번 기운을 차렸다. 혼자였다면 '그냥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겠다.'하고 포기해 버렸을 거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매콤한 불닭볶음면에 달콤한 허니콤보 치킨을 먹었더니 신기할 만큼 빠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동업자인 남자 친구는 든든한 회사 사수였고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든든한 사업 파트너였다.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미래를 통째로 바꿀 기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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