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주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가입한 지는 꽤 되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서 인스타를 시작하자 아이들의 바깥 생활이 궁금해 가입했었는데 처음에만 조금 보다 시들해져 가입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그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구경하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매일 확인한다. 그들의 작품을 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 이런 걸 만들 수도 있구나, 창문의 느낌은 이렇게 그리는 거구나’ 하며 배우는 것도 많다.
작품뿐 아니라 살림과 요리를 예술적으로 하고 책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많은 자극이 된다.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지만 그냥 그림을 모은다는 취지로 꾸준히만 하자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멋진 사진과 그림을 구경하다 jiutable이라는 분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다. jiu님 할머니의 이불장 사진이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며칠 후 다시 들어가 저장을 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냥 그림만 그리는 건 자유지만 인스타에 올리고 싶었기에 jiu님에게 허락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허락을 기대하고는 있었지만 사적인 이불장 사진이기에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못했던 답장이 왔다. 할머니의 이불장을 손그림으로 그렸다니 감격스럽다고, 프린트해서 가져도 되겠냐고 오히려 나의 허락을 구하는 답장이었다. 아직 내 그림에 의심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에 얼떨떨했다.
친구들, 후배나 지인들이야 워낙 친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잘 몰랐기에 이 정도도 발전이라는 의미에서 잘한다 칭찬해 주었지만 인스타에서 그런 반응은 의외였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물건이라 그랬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나의 작은 그림 한 장이 누군가를 기쁘고 감격스럽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울림을 주었다. 다음 날 딸의 아이폰으로 좀 더 선명하게 사진을 찍어 다시 전송하자 본인의 스토리에도 올리고 팔로우도 해 주었다. '할머니께 전송해 드렸더니 너무도 기뻐하셨다, 나중에 프린트해서 할머니 댁에 걸어두겠다'는 내용의 댓글도 달아주었다.
세상에나! 원본도 아니고 프린트한 걸 걸어주시겠다니 황송하고 기뻤다. 내가 그린 별 것 아닌 그림 한 장이 사랑하는 할머니와의 추억 하나를 보태는 기쁨을 선물하는 사랑스러운 매개체가 된 특별한 경험이었다.
언젠가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친한 이들의 반려견 그림을 그려 선물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정성스럽게 그린 반려견 사진을 포장지에 싸서 선물하자 친구가 포장지를 풀고 그리워하던 반려견의 그림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었다. 슬프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다시 만난 반려견의 모습에 행복한 모습으로 우는 모습이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많이 감동해서 나도 더 잘 그리게 되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림을 선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쁨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의 작은 행동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 좋고 잘 살아나가게 도와주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글쓰고 그림을 그리고부터 주변 사람들과 하는 대화의 내용이 조금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가끔 카톡 프로필에 올린 내 그림을 보고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온 친구도 있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과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화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들과 그림과 글쓰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도 좋아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됐다는 말들을 한다. 뭘 해볼까 고민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꿈이 있던 후배는 새로 색연필을 장만해 컬러링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도 집 꾸미고 고치는 일을 좋아하니까 그런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볼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게 기쁘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마음 한 편에 품고 있던 꿈이나, 꿈까지는 아니라도 지금도 좋아해서 자꾸 하는 일들을 다른 눈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들의 그런 장점이 보인다. 한 친구는 전공은 못했지만 지리를 아주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선지 임장 다니기를 즐겨하고 지금도 서울의 모든 둘레 길을 완주했다. 전국의 걷기 좋은 명소를 찾아 카톡에 매일 올려준다.
또 다른 후배는 집 인테리어를 잡지책보다 예쁘게 하고 요리와 플레이팅, 식물 키우는 솜씨가 보통을 넘는다. 여행을 좋아해서 늘 여행계획을 짜주고 예약해 주는 또 다른 후배와 친구, 아이 친구 엄마도 있다. 그들 모두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이 내 눈에는 이미 보였다. 단지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해도 해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힘이 솟게 만들어 주는 일들이 있다. 그걸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가 기록으로 남겨 형체를 갖추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블로그에든 자신의 작은 노트에든 꾸준히 기록을 남기면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고 기쁨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때로는 그런 정보를 찾고 있던 이에게 많은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일들이 삶의 활력소와 의미가 되고 행복을 자꾸 만들어내는 도라에몽 주머니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브런치를 하며 글을 모으고 인스타그램에 아직 몇 장 되지도 않는 그림을 모으면서 벌써 그런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