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1주-23주
임신 21주
정밀초음파 검사가 있던 날. 오전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임산부가 이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도대체? 왜? 저출산국이라는 거지??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난 도착해서 삼십 분을 더 기다리고서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내 배에 올려진 초음파 기계. 그 기계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아이의 작은 얼굴과 작은 손가락, 발가락, 심장 하나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 배속에 저렇게 작은 아이가 자라고 있다니.... 신기함과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미묘한 감정이 내 안에 흐르고 있었다.
매번 검사하러 갈 때마다 많이 커 있는 아이.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태동도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다만 19주부터 먹기 시작한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물을 너무 적게 먹어서인지 선생님께서는 양수가 조금 적다고 아이를 위해 물을 많이 먹어줘라고 하셨다. (당분간 커피는 끊는 걸로) 그리고 아이는 또 한 번 반전 없이 아들임을 입증했다. 또 다리를 벌리고 ‘엄마 난 아들이에요’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조금씩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져 가고 있는 아이. 아이가 클수록 엄마가 된다는 설렘도 커져가는 것 같다. 19주 뒤엔 진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그 모습이 정말 궁금해진다.
임신 23주
정밀초음파 검사를 한지 불과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의 몸에서 이상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요일부터 조금씩 시작되었던 배 통증이 월요일에는 조금 더 심하게 나타났고 급기야 화요일 아침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왔다. 누울 수도 없고, 일어설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말 그대로 말만 해도, 기침만 해도 배에 통증이 와서 잠도 며칠째 자지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침 일찍 신랑과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산부인과가 당일 예약이 안돼서 일찍 갔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도 고통의 연속... 그것도 그럴 것이 아파서 잠을 못 잘 때 검색을 통해 아기의 유산 글을 읽는 바람에 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잘하던 아기의 태동도 없고 배는 아프고... 정말 아이가 잘못된 건 아닌지 무섭기도 하고 두려움도 앞섰다. 드디어 나의 차례. 우선 예진실에서 먼저 혈압체크와 체중체크를 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나의 체중은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킬로 불어나 있는 상태. 기분은 점점 더 다운되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산부인과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며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결과는 자궁근종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2센티밖에 안 되는 작은 근종인데도 불구하고 아팠던 이유는 근종의 위치도 애매하고 아이가 태동을 하면서 그걸 건드려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도 다행히 태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셔서 아팠지만 난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도 잘 크고 있다고 하셨고 혹시나 해서 자궁경부 길이도 재어봤는데 다 괜찮다고 하셨다. 참고로 이맘때 나처럼 이렇게 자궁근종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며 오는 임산부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자궁근종이 크든 작든 임신한 상태에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엄마는 아파도 견딜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난 진통제만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통증은 여전. 계속 흐르는 눈물. 이제 4개월이나 남았는데 이 자궁근종 통증을 출산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온통 걱정뿐이었다. 이렇게 아프니 먹는 것도 싫어지고 그저 따뜻한 죽만 생각났다. 엄마라도 있었다면 아빠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내가 아플 때 죽이라도 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더 우울해지는 마음.
그런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신랑이 주방으로 가더니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근 파편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가스레인지 주변도 엉망이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준 신랑에게 너무 고마워서 울컥할뻔했다. 가끔은 아들을 하나 더 키우고 있나 할 정도로 신랑이 철부지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고 아이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신랑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23주. 곧 임신 7개월 차.
그때 동안 아이만큼이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커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파도 괜찮아.
그러니 무럭무럭 잘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