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나 야채, 라면이 떨어졌을때는 사와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는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꼭 살것 리스트에 적어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적어 둬야지'하는 생각도 잊어버린다.
할일을 적어 하나씩 지워나가지 않으면 급한 일을 까먹기가 너무 쉬워졌다.
얼마전에는 치과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며, 열쇠랑 휴대폰이랑 지갑이랑 모자까지 챙겨가지고 확인하며 버스를 탔었다. 그런데 출발한지 4정류장째에서 번개처럼 잊은 물건이 생각났다.
치아에서 떨어진 금조각을 깜빡한 것이다.
결국 나는 벨을 누르고 내려서 땀범벅이 되도록 뛰어 집에 도착했다.
컴퓨터 옆 책꽂이 앞에 고이 모셔둔 금조각을 집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다시 버스를 타고 치과에 전화해 15분 늦는다고 양해전화를 드려야 했었다.
물론 예전보다 식사 때 흘리는 일도 많아졌다. 10년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치과 마취가 덜 깼을때는 음식을 넣고 입을 닫은채 우물우물 씹는게 그렇게 어려웠다.
입술과 턱의 반이 무감각하니 입술을 완전히 오므리는 법을 잊은거다.
당연히 입안의 음식물이 흐르거나 턱에 묻었고 그걸 닦으며 우리 할머니 생각을 했다.
노인들은 얼마나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실까.
자신이 잊어버거나 실수하거나 흘린 것들을 뒷처리하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아마 내가 마냥 젊기만 했다면 머리숱의 소중함도, 치실의 중요성도, 운동과 그리고 선크림의 필요성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늙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이들어가는 내 몸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나 파스타를 나에게 먹일 때도 있지만 영양과 지방의 균형을 위해 대부분은 채소반찬과 밥과 과일을 먹인다. 먹고싶다고 당장 주문하거나 사러 가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왠만하면 미리 저렴하게 사 둔 야채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조리해서 먹는다.
명상을 하며 과거의 일들을 드러내고 부끄러워 할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구나 알게 한다.
기뻤던 일은 행복했구나. 알게 한다.
상처 받아 꽁꽁 접어놓은 기억도 가만히 펼쳐서, 아팠구나 하고 알게 한 뒤
안고 있었던 죄책감도 살살 털어 날려 보내려고 노력한다.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하고
스트레칭도 빼먹지 않는다.
매달 20일이 되면 수영을 등록하고, 하고 싶었던 작업도 구상한다.
집안일과 할 일을 할 때마다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내 몸에게 말없이 말해준다.
모든게 너무나 평화롭고 완벽한 요즘이다.
돈을 못 버는것만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