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딸

by 바다유희

농부였던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흙 한 줌 스스로 덜어내고 보태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보드라운 흙이 모종을 감싸고

따스히 끌어 안아 생의 줄기를 피워 올릴 때까지

피땀을 흘려 본

사람만이 아는 그 눈물을


비탈진 산허리를

칡덩굴 걷어내며 크고 작은 돌들

이고 지고 담을 쌓으며 희망과 절망의

경계를 오가던 그 억겁 같은 시간을


해 오르기 전 새벽부터

해 지고 어둑한 그림자 사라질 때까지

수천 번 지고 나른 그의 무겁고 아득했던 생의 무게를


그 비탈진 산등성이가

기름진 밭이 되어 해시시 담배꽃이 피워오를 때까지

아버지의 등걸 뒤에서 나는

그의 타버린 젊음을 보았다

한 사람의 세상이 꿈으로도 열리지 않는 시간을 보았다

온몸을 불태워도 지워지지 않는 가난의 그림자 앞에

절망한 사내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남은 자들이 사치로 허기를 메꾸는 일

그림/문선미작가:제목/슬픔이 하나

시 한 편 쓰는 일이

때로는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는데

막내딸이

그리 될 것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딸을 위하여

신에게 재물이 되었다

거친 땅에서 걷어내야 하는 돌이 되는 것

고르고 골라야 드러나는 보드라운 흙

아버지는 큰 바위로 비켜서서 돌담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어준 울타리 안에서

보드라운 흙 위에서 피어나는 꽃

고통의 농사짓는 일

시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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