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농사

by 바다유희

한 세상에서 평생 시를 쓰는 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고통을 길어 올려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

농부가 평생 밭을 갈아 싹을 키우듯

바라는 요행 없이

고통의 무게를 켜켜이 쌓아 거름을 만드는 것


천 번의 죽음과

만 번의 목마름으로

꿈마다 지옥에서 탈출을 꿈꾸는 일

때로는 밤마다 살인을 꿈꾸고

복수의 칼날을 내려놓는 일

천 번을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비루하게 다시 목숨을 구걸하고

온 사랑의 실연으로 세상 끝으로 달려가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또 모두에게 실연을 당하는 것


시를 쓰는 일은

시지포스의 언덕을 묵묵히 오르다

까마귀에게 두 눈을 내어주고도

천국을 더듬어 희망의 냄새로 죽어가면서도

문득

천형을 받았구나 깨달아 가는 것


시를 쓰는 일은

스스로 감옥을 만드는 일

때로는

그곳이 가장 안온하여 매몰되고

불온한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림/문선미작가:제목 I am happy

시를 쓰는 일은

천당과 지옥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

지옥의 죄수이면서

천국의 방랑자를 꿈꾸나니

헛꿈을 또 길어 올리나니

이전 03화시 쓰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