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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든 Oct 22. 2024

에필로그



미아와 민이 같은 시외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처음 이 버스에 오를 때부터 서로를 알아보았다. 약 한 시간 동안, 눈을 마주치던 순간은 없었다. 그저 미아는 버스에서 중간 정도의 자리를 찾아가며 민의 뒷모습을, 민은 맨 뒷자리에 앉은 후에 이미 몇 줄 앞에 앉아있는 미아의 뒷모습을 보고 상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들이 눈을 마주치게 된 건, 한 시간이 흘러 아직 그들의 여름이 있는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였다. 만원 버스가 다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다 거의 마지막에 내린 미아는, 이미 내려 미아를 기다리고 있던 민과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미아는, 자신이 버스에서 민의 뒷모습을 봤을 때부터 한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기대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민이 먼저 말했다. -학교 가?

그들 사이에 있었던, 하지만 크게 표현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딱 끊겨버린 것 같았던 미안함과 어리둥절함과 크나큰 배신감과 힘 빠지는 죄책감과 다른 듯 비슷한 후회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있었냐는듯한 가벼운 느낌이었다.

-친구 만나러 왔어.

-그렇구나.

미아는 카페 녘으로, 민은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넓고 깨끗한 터미널 건물을 뒤로한 채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미아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낯선 터미널이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미아가 말했다.

-새로운 터미널로 도착할 줄 몰랐어.

민도 미아를 따라 똑같이 고개를 돌려 터미널을 바라봤다. 햇빛을 받고 있는 터미널 건물의 모서리가 반짝거렸다.

-오늘부터 시작한 거래. 이제는 여기가 터미널이야.


그들은 학교 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아마 이 도시 안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다정한 보통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오랜만에 마주쳐서 한다는 대화가 최근에 본 책과 영화라는 게, 그다음으로는 그들이 가던 카페와 서점의 변화에 대한 것이라는 게, 그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이 오고 가는 걸 다정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그냥, 이게 지금 그들의 관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 관계를 분명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정의할 수 없는 관계 그대로 존재하는 것도 괜찮았다.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우리는 뭘까?’라는 물음에 이 단어 저 단어를 이리저리 대보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의미 없는 고민일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함께 도시의 익숙한 거리를 걸으며, 불확실하면서 다정할 수 있는 관계는 이 세상 곳곳에 이렇게 존재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자신들이 그 증거들 중 하나였고, 바로 그게 의미 있는 무언가일 것이었다.


학교가 저 멀리 보였다. 느린 바람에 그들의 얇은 옷이, 머리카락이, 주위의 나무들이 느리고 크게 흩날렸다. 이 도시에 다시 여름이 오고 있었다.

그들이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을 때, 민이 물었다. -다시 여기로 올 거야?

-글쎄, 언젠가는 올 수도 있겠지.

미아가 대답하던 그 순간, 자신이 알고 있던 익숙한 자신과 또 다른 낯선 자신이 완전하게 섞였다. 지금의 자신과, 그동안 이 도시 안에 계속 존재하던 또 다른 낯선 자신 둘 다 나라는 걸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가 민에게 물었다. -너는?

-나?

민이 말했다. -나는 지금도 여기에 살아.

시간은 흐르고, 공간도 흘렀다. 물이 고여만 있는 것 같던 하천도 어떻게든 조금씩 움직이긴 했으며, 오래된 터미널은 무너지고 새로운 터미널이 북적거렸다. 어쨌든 그들은 고여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움직였다. 도시와 사람이 흘렀다. 느린 것도,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늘여 놓았던 것도 흘렀다

참 다행이지.

그들이 거의 동시에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여름의 장면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눈이 그들 사이에서, 느리게 마주쳤다.


그들은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녘으로, 학교 안으로 흘러갔다.

미아가 주위를 천천히 돌아봤다. 이 멋진 도시가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


이 도시는 계속 외로운 사람들로 북적였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말들은 다시 시작되었다가 다시금 멈추기를 반복했다. 어떤 도시는 사람을 감싸 안았지만 어떤 도시는 사람을 바깥으로 떠밀었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도시를 일상으로 받아들였지만 어떤 사람은 도시를 일상으로 가져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중간에, 어떤 사람은 마지막에 깨달았으며, 어떤 사람은 이들이 깨닫기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러다 또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하루하루의 여름 장면들은 분단위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종종 두려워했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 선선한 초가을 공기에 위로받았다. 그러면 또 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자신들의 사소한 것들은 정말 말 그대로 사소한 것들이었음을, 이 세상에 비해 본인들의 존재가 너무나 작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곧 자신들을 압도했던 이 도시 역시 사실은 그리 거대하진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세상에 비해서. 어쩌면 그들이 복잡하게 꼬여있다고 여겼던 모든 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낯선 존재들 모두가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문득문득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도시와 자신들의 관계가 지금 이 순간,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했다.


그러면 내가 이제, 이 도시에 존재하게 된 건가?


누군가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아직 아니라고 대답했으며, 또 누군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대답들은 때때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 질문은, 이 이야기 속에서의 연인들의 사랑과 같은 거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무2 같은 거였다. 중요하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그런 질문 같은 건 상관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어떠한 사실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장면들과 순간들이 있었고, 그 장면들과 순간들은 여기, 이 도시를 날아다녔다는 것. 그들이 그 장면들과 순간들 속에 존재했고, 서로의 것들을 목격해 주었다는 사실.

그렇게 그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곳에 살았다는 그 사실은, 그들이 하는 수많은 질문들과 대답들이 만드는 희열과 혼돈과는 별개로, 항상 조용히 존재했다. 그들은 그 사실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별안간, 현실 속의 단순하고도 진실한 것들을 통해  사실을,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 바로 이런  자신이 그렇게나 찾던 의미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이 도시에 온 순간부터,

그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했다.


이 도시도 그걸 알았다.







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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