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정 개인전, "소소한 일상"에 스며든 <몽상>의 미학
윤수정의 첫 개인전, “소소한 일상”에 스며든 『몽상』의 미학, 경인미술관 6전시관, 7월10일~16일
윤수정 화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 경인미술관에서 7월10일부터 7월16일까지 열리고 있다. 강렬하거나 화려하기 보다는 몽환적이라 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시선을 잡아끈다. 작가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주제를, 그리고 작품명도 대부분 <소소한 일상>이라 이름 부치고 있지만, 소소함 보다는 마치 꿈을 꾸는 듯, 특별함이 느껴진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들을 일별하며 일상적 삶과 경험을 ‘몽상(reverie)’으로 대위(對位)하는 것인가 싶었다.
시인 보들레르는 “꿈꾼다는 것은 행복이다. 꿈꾼 것을 표현하는 것은 영광이었다.”라고 하였는데, ‘일상의 몽상’속에서 추억의 이미지들을 되새김하며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을 작가를 상상해 보게 한다.
작가는 연작으로 “소소한 일상”이라는 주제를 그려내었다. '말은 곧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면, <소소한 일상>이라는 주제는 그 자체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소하다"라는 말은 "대수롭지 않고 평범하다"는 의미이므로 이를 표현한 작품들은 자연히 이에 연관된 시각적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시된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일상의 소소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특별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즉 작화(作畵)의 소재들인 스케이트화, 꽃, 공작새 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것일망정 이를 매개로 표현된 작품들은 매우 특별하게 상징과 은유를 대변하고 있으며, 중의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작품의 출발은 소소했을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완성된 결과는 그간 작가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 심상(心象)들을 풍요로울 만치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그동안 기다리고 견뎌온 예술적 갈증을 쏟아낸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였다. 다만 ‘소소함’이라는 조심스런 접근마인드를 통해 시도하는 중이라고 이해하려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작업과 작가로서의 정체성 유지에 대한 고민을 작가노트에서 토로하면서도, 다행히 일상생활의 평범하고 작은 경험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며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일상적 행위에서 예술적 행위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었으며, 내면의 감정표출과 더불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런 고백을 통하여,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과정과 더불어 오랫동안 간직한 꿈의 실현에 다가갈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작가가 체험한 소소한 일상에 스며든 “몽상에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프랑스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미술론>에서 “인생이 바로 꿈이고, 실제로 체험한 것을 넘어 꿈꾸는 것만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으며 많이 꿈꾸고 또 깊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풍부한 생을 사는 자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필자는 이 말을 떠올리며, 한국의 중견 여류작가가 겪는 상황적 절차와 여건에서 갈등이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 인식을 이렇게 정공법으로, 그리고 매우 유연하고 넉넉하게 대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간 것에 대해 매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간에 자신이 겪은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소소한 일상에서도 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자신이 겪어온 것에 그저 ‘대수롭지’ 않게 얘기할 뿐이다.
소소한 일상(2023)
소소한 일상(2021)
소소한 일상(2020)
전시작품들 중 특히 2023년에 완성한 「소소한 일상」은 눈길을 끌 만하였다. 작품명과 달리 분명 심상치 않은 일상의 영감이 담겨있었다. 삼베위에 분채, 여러 혼합재료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다. 삼베에 배어드는 채색의 효과와 더불어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몽상의 세계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 그래서 은연중에 추구한 “스밈(삼투滲透)효과”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듯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레 ‘몽환적’인 느낌까지 유발된다.
이 작품은 화려한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공작새와 활짝 핀 해바라기가 어울려 있다.
사랑의 감정을 온통 암시하면서도 쉽게 눈에 띄지는 않게 하려는 듯, 다소 복잡한 느낌을 주고자 한다. 언뜻 한지에 채색을 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삼베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색을 반복하여 칠하고 중첩하니 맑은 느낌보다는 뒤섞이며 현란함마저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혹시 작가의 심리상태가 평온하지는 못한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려 지기도 하였다. 아무튼 삼베를 바탕으로 하여 채색을 하니, 색이 바탕에 스며들어 전체적으로 “스밈”의 느낌이 와 닿았고, 그래서 이 그림에는 작가 내면의 욕구, 즉 자신의 은밀한 "꿈" 또는 욕망이 은연중에 묻어나는 듯도 하였다.
이번 전시작품들의 작화의 출발은 작가의 주변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주로 아들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보고 겪은 것들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이를 탐구하듯 깊이 있게 파고들며 그것들의 내면에서 발현될 상징이나 이미지를 새롭게 형상화하거나 채색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작완료시점을 기간으로 제시한 작품 <소소한 일상(2021~2022.4)>은 아직 날개를 펴지 않고 있는 공작새의 불안한 태도와 웅크린 채 왜소하게 비껴있는 여인(엄마)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작가로서의 입지에 대한 현재의 모습을 상징하면서도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부분을 이중적으로 암시한다. 이처럼 자신의 환상적인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포기할 수 없지만, 엄마로서의 간절한 입장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빙판 위에서> 역시 아들과의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소재로서 섬세하면서도 환상적으로 표현해 내고자 애쓰고 있다.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들의 연기에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 하지만, 마지막까지 잘 끝내기를 소망하는 엄마의 염려하는 마음까지도 표현해 내고 있다. 그림에서 밝은 칼라의 채색이 반복되고 중첩되면서 점점 무거운 색으로 변하는 것은, 그래서 환한 이미지의 해바라기가 무겁게 변화된 것은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꽃시계(2019)
소소한 일상(2019)
한편, 「꽃시계(2019)」를 통해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한 작가의 내면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 듯하다. 작품 속에는 활짝 꽃잎을 열어 꽃술을 내보이는 꽃송이들이 서로 환상적으로 어울려 있다. 원래 꽃들은 숨길 듯이 다소곳하게 자기 속을 잘 보여주지 않는데, 작가는 유독 이런 표현을 선택하였다. 작품을 그린 그 시기에 무슨 특별한 즐거움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작가는 자신의 내면의 뜻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건강하고 솔직한 심성을 가진 작가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윤수정 작가는 동양화가로서 전통적인 동양화가 아닌 현대적 화풍을 지향하면서도 주로 동양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재료와 소재(분채(粉彩), 아교(阿膠)반수(礬水), 진채(眞彩), 은박(銀箔), 그리고 화판으로 순지(脣脂), 나무, 비단, 삼베 등)를 통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이러한 다양한 재료의 활용능력은 앞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 화폭에 다양한 메시지들이 서로 어울리며 세련된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고 표현하는 것은 향후 독자들과의 소통을 기대하게 할, 그가 가진 개성으로 자리를 잡을 듯하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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