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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pr 22. 2023

억척스레 너를 지어먹는다. _ 해물부추전.


 낮과 밤의 온도가 전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듯한 나날입니다. 밭은기침을 조금 뱉어내며 미열이 있는 이마를 잠시 짚어보고 아스피린 한 알을 삼켰습니다. 창가에 매달린 투명한 방울들. 새벽녘부터 맑은 봄비가 내렸나 니다. 서재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수많은 소리들과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지요. 비 내리는 봄의 낮은 싱그러우면서도, 아련하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추억을 소환해 주기도 합니다. '프루스트'의 홍차에 찍은 마들렌처럼, 빗방울이 조곤거리는 회상들의 파노라마는 가장 가슴에 깊이 박인 추억으로 언제나 시작되지만, 어느새 수많은 기억들이 의 손등에 한방울, 또 한방울 떨어져, 흘러 내리곤 합니다. 푸른 맥을 따라 흐르는 은빛 기억들. 시간 속에 각인된 다이아처럼 반짝거리는 이런 기억들이 어쩌면 지금의 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들이 떨어지 빗방울을 추앙하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억척스레 자신을 다시 만들어내는 부추가 참으로 기특합니다. 끊임없이 내어주고 상처받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자신을 재생시키는 부추에게서 고결한 삶을 만져보곤 하지요. 얼마든지 밟고 지나가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부드럽게 삶을 이해하는 강물같은 단단함. 에게도 그런 강건함이 허락되어질까요. 쓰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습니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온다기에 부추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비가 내리는 봄의 낮이 이토록이나 황홀한 걸 보니, 친구의 발짝이 무척이나 그리웠나 봅니다.


'언제 심었길래 부추가 이렇게나 빨리 자라?'

'작년에 심었어. 부추는 겨울을 이겨내는 애들이야.'

'나무가 아니더라도 겨울을 보내는구나...'


어리석음을 잘라내려는 듯, 겨울을 이겨낸 텃밭의 부추를 조금씩, 또 조금씩 잘라내었습니. 어느 것 하나 순한 것이 없는 계절을 부추는 온몸으로 담담하게 지나가며, 다시 중력을 거슬러 연녹빛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는 여전히, 아니, 끝끝내 어리석으며 기다리고 방황하면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살아가모습일 거라고 더듬거려 봅니. 살아보니 단정짓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는 것같으니 말입니다.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요즘에는 쓰여진 문장들이 를 살아가는 건지, 가 문장들을 따나 살아가는 건지,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지금도 흐릿하기만 한, 질문들이 부추의 잎사귀를 부여잡고 애처롭게 나부끼고 있으니까요. 아직도 글을 쓰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것인지. 다만, 죽음에 다다를 무렵이 온다면, 아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들은 부추를 다듬으며 친구의 농담을 듣던 그저 이런 일들 뿐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확신은 아마도 의 시간 속에서 안온하게 자리할 서재와 책방의 기억들, 그리고 자신의 무렵과 기척을 내어준 이들과의 추억이 읽어주고, 받아 쓴 문장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한 단어, 그것 때문에 견고하게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한 때는 영원할 것처럼 나누었던 사랑도 한순간 덧없는 감정으로 느껴지더라도, 모든 걸 나눌 것만 같던 끈적한 우정도 세월의 무게에 눌려 사라질지라도, 다시 억척스레 채워지는 것이 사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인연들도, 썰물처럼 밀려가는 인연들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나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것 뿐이겠지요. 그들이 남긴 인연의 씨실과 날실들은 추억을 잉태하고 저의 삶을 옮겨갑니다. 복숭아빛 황혼녘을 지나 어스름에 서서 두려움 없이 선명하게 문장을 이어, 마침표를 찍고 인연이 되었던 이들에게 가만히 부칩니다.


'참, 고마웠노라고.'


 부추를 맑은 물에 씻기고 우려서 나무 도마에 올려 손가락 마디 만큼의 길이로 잘랐습니다.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색하지만, 조금씩 배우며, 익히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기대도 해 봅니다. 날카롭지 않은 둥근 소리가, 어긋나지 않는 적확한 소리가 언젠가는 시골 서재에서맑게 울려오겠지요. 코끝에서 한참을 머물던 갓 캐어낸 부추와 흙의 향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 이 온유한 냄새로 친구의 코끝을 간지럽혀 주고 싶은 생각에 장난을 걸어보기도 합니. 

양파와 당근, 매운 고추도 채를 썰어 가지런히 옆에 두었습니다. 단정하게 정리된 것들은 언제나 어긋난 마음의 조각들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저리도 곱게 정렬된 것들을 보며 흩어지고 조각나버린 마음을 맞추려 애쓰는 가끔은 처연하기도 하지만, 그런 고독 속의 사유이 삶과 사람, 사랑의 사이들을 메워주는 것만 같습니다. '네루다'의 시처럼,  사랑은 성장하고, 잘려지고, 그렇지만, 다시 재생하는 부추를 닮은 듯합니. 잘려나간 단면의 모습들을 온전히 떠올리며, 상흔을 메우고, 이전보다 더 크고 굵게 자라나 어느새 나무가 되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단단한 부추는 나무가 될 자격이 이미 충분한 것만 같습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소진시켜 누군가를 채워주말입니다.


 튀김가루가 나을까, 부침가루가 나을까를 친구 녀석과 갸우뚱거리며, 고민하다가 결국 둘을 섞고야 말았습니다. 어디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던 적이 있던가요. 이거, 아니면 저거. 단정지으며 잘라버리는 마음들을 사실 는 잘 믿지 않습니다. 삶에 옳고 그름이 없음에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잘라내는 이들이 가끔은 걱정되기도 합니다. 쉽게 부러지고 무너지고, 그렇게 후회하며 자신을 속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보면, 음식에도 만드는 이의 성향이 베어나오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조금은 슴슴하게 맛을 내어보고 싶습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보이겠지만, 오히려 꺽이지 않는 부드럽고도 강건맛은 이런 맛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희멀건 반죽이 길게 늘어지며 툭하고 떨어져 내릴 때까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섞었습니다. 고민하다 까만 국간장을 살짝 떨구었지요. 친구가 잘라둔 부추와 채소들, 그리고 손질해 둔 오징어를 반죽에 넣고서, 부추전을 구웠습니다. 그는 말없이 부추전을 굽는 일에 몰입하는 듯했습니다. 는 그 사이 양조간장과 식초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부추전을 뒤집는데 연달아 실패하는 친구 덕분에 많이도 웃었습니.

사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만아닌 것만 같습니다.


 자연의 빛이 관통하던 그리움들은 어느새 지평선 위로 반짝거리며 침잠하다가 이내 별들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봄의 향기를 가득히 묻히고 먼 길을 달려온 봄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듯, 누군가의 마음에 마음을 보태는 문장들과 음식들을 지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야. 이거 너무 맛있는데.

 비오는 날에는 역시 부추전과 막걸리만한게 없다.'

'다음에 비오면 또 와. 부추전 해 먹자.

 부추는 계속 다시 자라나서 저기 그대로 있어.'


부추가 다시 자라고, 비가 내리는 어떤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면, 는 생각에 잠기며, 다시 억척스레 부추전을 지어먹겠지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고통도 찾이올 것이고, 비루하게 주저앉아 외로움을 다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수없이 태어난다 해도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면, 아마도 부추처럼 억척스레 다시 사랑하며 살아내는 것뿐겠지요. 억처스레 함께 견디며 말입니다.

덧. 전을 부치는 일의 핵심은 뒤집기였습니다.

      맛있었지만, 비쥬얼이 ...

      다음엔 제가 구워보아야겠습니다.

      주재료: 오징어, 부추, 튀김가루와 부침가루,

                    국간장 반 숟가락.

      부재료: 당근과 양파 반개. 매운 고추 한개

      양념장: 국간장, 식초, 고추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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