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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pr 22. 2023

억척스레 너를 지어먹는다. _ 해물 부추전.


 ‘고난 속에 삶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프리드리히 니체」     


 낮과 밤의 온도가 전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듯한 나날입니다. 겨울과 봄의 줄다리기를 지켜봅니다. 밭은기침을 조금 뱉어내며 미열이 있는 이마를 잠시 짚어보고 아스피린 한 알을 삼켰습니다. 창가에 매달린 투명한 방울들. 어스름한 새벽녘부터 맑은 봄비가 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재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수많은 소리들과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지요. 비 내리는 봄의 낮은 싱그러우면서도, 아련하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추억을 소환해 주기도 합니다. ‘프루스트’의 홍차에 찍은 마들렌처럼, 빗방울이 조곤거리는 회상들의 파노라마는 가슴에 가장 깊이 박힌 추억으로 언제나 시작되지만, 어느새 수많은 기억들이 저의 손등에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져, 흘러내리곤 합니다. 검푸른 정맥을 따라 흐르는 은빛 기억들. 시간 속에 각인된 다이아처럼 반짝거리는 이런 기억들이 어쩌면 지금의 저를 살아가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그리워지는 기억이 아니라, 제가 살아왔음에 대해 온전히 인지하고 싶은 기억입니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들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추앙하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억척스레 자신을 다시 만들어 내는 부추가 참으로 기특합니다. 상처 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사랑은 어느 계절에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마더 테라사’ 수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끊임없이 내어주고 상처받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자신을 재생시키는 부추에게서 고결한 삶의 향기가 맡아지곤 합니다. 얼마든지 돌을 던져도 흐트러지지 않는 깊은 호수의 단단함. 한 곳을 향해 흘러가는 드넓은 강물의 떳떳함. 날카로운 바람과 얼음처럼 차가운 땅에서도 끝끝내 견뎌내는 나무의 우직함. 저에게도 그런 강건함이 허락되어질까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저 쓰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온다기에 봄날의 부추를 잘라 부추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승진을 확신하던 친구에게서 낙망한 자의 슬픔이 느껴집니다. 그를 위해 소쿠리를 들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빗방울이 내려앉은 봄의 낮이 이토록이나 황홀한 걸 보니, 친구의 발짝이 무척이나 그리웠나 봅니다.


 ‘언제 심었길래 부추가 이렇게나 빨리 자라?’

 ‘작년에 심었어. 부추는 겨울을 이겨내는 애들이야.’

 ‘여려 보이는데도 겨울을 살아가는구나...’

 ‘눈에 보이진 않지만, 겨울에도 끊임없이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 올리느라 분주했을 거야.’


 어리석음을 잘라내려는 듯, 겨울을 이겨낸 텃밭의 부추를 조금씩, 또 조금씩 잘라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순한 것이 없는 계절을 부추는 온몸으로 담담하게 지나가며, 다시 중력을 거슬러 연녹빛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아니, 언제까지나 어리석으며 방황하면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당한 방황도 살아가는 모습일 거라고 스스로 위안도 하면서 말입니다. 살아보니 단정짓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더군요.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요즘에는 쓰여진 문장들이 저를 살아가는 건지, 제가 문장들을 따라 살아가는 건지, 가끔씩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지금도 흐릿하기만 한, 질문들이 부추의 잎사귀를 부여잡고 애처롭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마주해 달려오고, 불안이 저를 기웃거립니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죽음에 다다를 무렵이 온다면, 반드시 떠오를 기억들은 부추를 다듬으며 친구의 농담을 듣던 그저 이런 일들뿐이라는 것을 심장이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아마도 저의 시간 속에서 안온하게 자리할 서재와 책방의 기억들, 기척을 내어주고 온기를 전해준 이들과의 자그마한 추억들이 있기에 가져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를 받아 쓴 문장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한 단어, 그것 때문에 견고하게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영원할 것처럼 나누었던 사랑도 한순간 덧없는 감정으로 느껴지더라도, 모든 걸 나눌 것만 같던 끈적한 우정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시들해질지라도, 다시 억척스레 채워내는 것이 사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인연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연들도. 다시금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 시절을 지나가는 것이겠지요. 그들이 남긴 인연의 씨실과 날실들은 저의 삶에 다양한 무늬의 옷을 입혀줍니다. 동일한 옷이 아닌 계절을 따라 변하는 옷 덕분에 사는 일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습니다. 복숭앗빛 황혼 녘을 지나 어스름에 서서 두려움 없이 선명하게 문장을 잇습니다. 그리고 인연이 되었던 이들에게 마침표를 찍어 수줍게 전합니다.

 참, 고마웠노라고.


  부추를 맑은 물에 씻기고 우려서 나무 도마에 올려 손가락 마디만큼의 길이로 자릅니다. 칼과 도마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씩 배우며, 익히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 같은 것도 해봅니다. 날카롭지 않은 둥근 소리가, 어긋나지 않는 적확한 소리가 언젠가는 시골 서재에서도 나지막이 들려오겠지요. 코끝에서 한참을 머물던, 갓 캐어낸 부추와 갈색빛 흙의 향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이 신비로운 냄새로 친구의 코끝을 간지럽혀 주고 싶은 생각에 장난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양파와 당근, 매운 고추도 채를 썰어 가지런히 옆에 둡니다. 단정하게 정리된 것들은 언제나 어긋난 마음의 조각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저리도 곱게 정렬된 것들을 보며 흩어지고 조각나버린 마음을 맞추려 애쓰는 제가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런 고독 속의 사유들이 삶과 사람, 사랑의 사이들을 메워주는 것만 같습니다. 되메워진 새살들은 어김없이 저의 삶을 단단하게 하리라는 기대감도 가져봅니다. 피가 흐르고, 고름이 터지던 삶의 상처들. 한때는 잘려 나갔던 단면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일어서는 게 우리의 삶에 부여된 유일한 사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단한 부추는 자신의 사명을 알고서 저리도 강건하게 살아가는 걸까요. 자신을 끊임없이 소진시켜, 누군가를 가득 채워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겐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이 있지요.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의 스치는 잔향만으로도 붙잡고만 싶은 그런 날이. 질척거린다고 비난받더라도 그저 머물고만 싶은 그런 날이. 죽으려는 마음과 살려는 마음의 모순된 의지가 함께 일어서는 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날이.

 그런 날이면 바람이 불어오곤 한다. 꿀빛 햇살이 모여 꽃잎이 되고 찬연한 달빛이 모여 호수가 되는. 반짝이는 별빛이 반딧불이가 되어 내려앉고 떨어진 나뭇잎이 편지가 되어 날아오르는. 바람은 생경한 세상으로 나를 이끈다.

 우리에겐 그런 날이 있다.’


 튀김가루가 나을까, 부침가루가 나을까를 친구 녀석과 갸우뚱거리며, 고민하다가 결국 둘을 섞습니다. 어디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던 적이 있던가요. 이거, 아니면 저거. 단정지으며 잘라버리는 마음들을 사실 저는 잘 믿지 않습니다. 삶에 옳고 그름이 없음에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깨어진 유리 조각처럼 잘라내는 이들이 가끔은 걱정되기도 합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러지고 무너질 때, 그렇게 후회하며 자신을 속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음식에도 만드는 이의 성향이 베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조금은 슴슴하게 맛을 내어보고 싶습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보이겠지만, 오히려 꺾이지 않는 부드럽고도 강건함에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희멀건 반죽이 길게 늘어지며 툭하고 떨어져 내릴 때까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섞습니다. 고민하다 까만 국간장을 살짝 떨구었지요. 친구가 잘라둔 부추와 채소들, 그리고 손질해 둔 오징어를 반죽에 넣고서, 부추전을 구웠습니다. 그는 말없이 부추전을 굽는 일에 몰입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 양조간장과 식초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부추전을 뒤집는데 연달아 실패하는 친구 덕분에 많이도 웃었습니다.

 사는 일이 뭐 별거 있을까요. 때때로 웃고, 때때로 울며, 그렇게 좋은 이들과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자연의 빛이 관통하던 그리움들은 어느새 지평선 위로 반짝거리며 침잠하다가 이내 별들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봄의 향기를 가득히 묻히고 먼 길을 달려온 봄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듯, 누군가의 마음에 마음을 보태는 문장들과 따듯한 밥을 지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야. 이거 너무 맛있는데. 비 오는 날에는 역시 부추전이랑 막걸리만한 게 없다.’

 ‘다음에 비 오면 또 와. 부추전 해 먹자. 부추는 계속 다시 자라나서 저기 그대로 있어.’

 ‘그나저나 너 정말 대단하다.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언제 이렇게 만들었대...’

 ‘다시 일어서야 했으니까. 해야만 했으니까.’

   

 사는 일이 버겁기만 한 그런 날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다면, 저는 생각에 잠기며, 다시 억척스레 부추전을 지어 먹겠지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고통도 찾아올 것이고, 비루하게 주저앉아 외로움을 다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수없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마도 부추처럼 억척스레 다시 사랑하며 살아내는 것뿐이겠지요. 돌아가는 친구에게 가늘게 눈주름을 잡고서 말해 줍니다.

 

 ‘언제나 강건하게 지내.’

덧.  주재료: 오징어, 부추, 튀김가루와 부침가루,

                    국간장 반 숟가락.

      부재료: 당근과 양파 반개. 매운 고추 한개

      양념장: 국간장, 식초, 고추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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