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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01. 2023

어디선가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당신들에게 _ 곰취 무침


 이른 새벽 동살의 울음으로 깨어나 커튼을 열어젖히니 보송한 안개들이 서재에 누워 있습니다.   뭉치들이 펼쳐놓은 세상 속에서 숨어서 우는 산새 소리를 듣고 있으니, 참으로 호사스러우면서도 영롱합니다. 며칠 간의 비와 자리를 바꿔 앉은 청아한 하늘 아래에서 찾아오는 온화한 적요는 외로움의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지요. 하얀 김이 실처럼 피어나는 까만 커피 한잔을 들고서 평상에 앉아 버릇처럼 잠시 생각에 잠기었습니다. 저에게 오늘 주어진 하루와  주, 남아있는  달과 한 해. 살아내는 일이 가끔은 버거워서 조금 울기도 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일은 좋은 일인 듯합니다.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들과 뜻밖의 결실들이 참으로 감사한 요즘입니다. 자연 안에서 보내온 자발적 고립과 글이 된 침묵들을 떠올려보니 그 안에는 잔잔한 설렘과 기쁨들로 채워진 일상이 있더군요. 인연은 그렇게 하나하나 때가 되면 건너오는 건가봅니다. 그럼에도 가끔씩 외로움의 통점이 수시로 붉어지는 건, 아마도 사람의 살갗을 닮은 온화한 누군가의 기척이 그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장이 다시 아려옵니다. 움직여야겠어요.


겨울잠을 자던 곰이 봄날에 깨어나 가장 먼저 찾아 헤매는 식물은 곰취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곰취라 불리우지요. 길었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심장을 닮은 곰취를 찾아다니는 곰은 자신의 심장이 아려서일까요. 아니면 사라져버린 것들이 아파서일까요. 폭한 겨울의 위세에 쓰러지고, 떠나버린 것들의 흔적에서 생겨나는 통점은 아마도 심장인 합니다. 겨울이 지나 부재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서 쿡쿡 찔러오는 부재하지 않은 것들이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것인지, 저의 부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결국 떠나버려존재하며 통증을 만들어내는군요.


유될 수 없는 태생적인 결핍을 안고서 태어난 우리들이지만,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조금은 내어줄 수 있을 때, 삶이 조금은 덜 고단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이고, 마음을 내어줄 수 있으니 또한, 사람일 것입니다. 곰취가 더 자라기 전에 곰취로 밥상을 차려보려합니다. 그리워하는 자마음은 아마도 따스하고 쌉쌀한 곰취의 맛이리라 여겨집니다. 타지에서 고향을 찾아 오는 자식을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목을 빼고 들어오는 버스를 유심히 살피는 어느 부모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봄날의 곰처럼, 장화로 갈아 신고서 곰취를 따러 어설프게 밭으로 설렁설렁 걸어갔어요. 자연의 길을 걸을 수 있기에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나날들이 제 안에 쌓여갑니다.


곰취로 무얼 만들어볼까 한참을 갸우뚱거렸어요. 날것의 곰취는 초봄의 여린 잎을 먹어야하는데, 저의 게으름 탓에 얼굴만한 곰취 잎사귀 한장을 머리에 이고서, 어느새 완연한 봄 앞에서 서성거리습니다. 그럼에도 본연의 식감과 향기, 그리고 맛이 너무나 궁금해서 곰취를 날것으로 먹어보려합니다. 아마도 요리를 잘하는 친구가 이 모습을 옆에서 보고있었다면, 그러지말라고 고개를 젓는 대신 빙긋이 옅은 미소를 보여주셨겠지요. 저를 바라보던 친구그 미소가 제 심장 한켠에 남아 가끔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기하지만, 자주 그 미소를 따라 웃고는 합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난번 부추전을 만들고 남은 오징어가 외로움으로 꽁꽁 얼어붙어 잠들어 있기에, 툭툭 건드려 깨워보았습니다. 그래요. '곰취 쑥갓 오징어 무침'으로 결정했습니다. 텃밭에서 잘라온 곰취와 쑥갓의 줄기 끝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조금 다듬어내고는, 맑은 물에 씻기어 잠시 우려내었습니다. 물에 가라앉은 마음을 보는 듯하였어요. 떠나가버린 것들은 저의 곁에 부재하지만, 언제나 심연에 가라앉아 제 안에서 존재하지요. 그래서 갑작스레 봇물 터지듯 흐르는 원인 모를 눈물은 정지시키기가 어러운 건가 봅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하지 못하겠지요.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무뎌지게할 뿐이기에 이별 후의 잔해들을 단정하게 담아둘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의 지층들이 쌓여가다보면 슬픔은 떠나버린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조금씩 대체되며, 옅어져가고, 대체불가능하고 고유한 그리움의 향기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힘을 낼 수 있는 긍정의 무엇으로 자리하리라는 기대감을 가져볼 수 밖에는 없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제가 그리움을 동력삼아 글을 쓰듯 말입니다. 심장을 닮은 가라앉은 곰취를 심연에서 건져올리니,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말한 문장 하나가 함께 딸려 건져집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네요.'


어법이 맞지 않아 더욱 아프게 다가오던 문장.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제목으로 차용될만큼 아프고, 또 아픈 문장이 물먹은 곰취를 보니 떠올랐을까요.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아픈 마음과 부재로 인해 아픈 마음은 분명, 통증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결국 한 존재로 인해 잉태되고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 아프다는 문장은 적확한 문장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건, 엄연하고도 엄중하게 심장이 시킨 사랑이기 때문이겠지요. 심장을 닮은 곰취를 먹으면, 제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플 수 있을까요. 

곰취와 쑥갓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아삭한 식감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볼품없는 모양새이지만, 달그락 달그락 요리하는 소리가 서재를 채우니 사람 사는 냄새인 듯해서 삶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더 맡으려 애써니다. 아마도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곰이 와작와작 곰취를 씹는 소리는 생을 의욕하는 다짐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리는 양파와 당근, 매운 고추를 듬성듬성 채를 썰며, 그들의 동그랗고 넓은 소명을 부러워하였어요. 누군가의 심장에 가만히 손을 얹어줄 수 있는 모나지 않은 마음들이 고결해 보입니다. 식초와 맛술, 금, 그리고 매실청을 넣은 끓는 물에 칼집을 낸 오징어를 30초 정도 담구었습니다. 비린 내가 씻기고 토실토실 잘 익은 오징어를 건져올렸어요. 꼭 다시 태어난 것만 같습니다. 제가 자연과 문장들 덕분에 다시 태어났듯 말입니다.


고추가루와 고추장, 다진 마늘과 식초, 설탕과 올리고당, 그리고 참기름과 참깨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어요. 곰취와 쑥갓, 그리고 채소와 오징어를 빠알간 양념장으로 옷을 입혔습니다. 음식은 손맛이라 하기에 투박한 손으로 조물조물 버무렸습니다. 심장을 닮은 곰취가 손 끝에서 저릿저릿하게 만져지더군요. 마음에 마음을 더할 때, 억장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삶이라도 견뎌낼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는 있지만, 그리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시절인 듯합니다. 저의 곁에는 수많은 좋은 이들이 있음을, 밀물 처럼 다가온던 마음들이 있음을 가끔, 아니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듯합니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나긴 인생이라는 터널에서 백색 섬광처럼 나타나 손을 내밀고, 일으켜 주는 작지만 고귀한 마음들이 가까이에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을텐데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현실의 반복되는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속박을 느슨하게 풀어낼 수 있는 힘은 어쩌면 특별할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한 문장뿐인지도.


자두빛 섬광이 하늘을 물들이고, 그림자가 무척이나 길어지며 흐려지고 있어요. 하얀 쌀밥 한 숟가락에 곰취 무침 한점을 올려 먹어봅니다. 누군가가 기척없이 찾아와 맛보았다면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저를 빤히 바라봐 주었을 것만 같은 맛이었어요. 지금도 어디에선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을 특별한 모든 이들에게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듯한 쌀밥 한술과 곰취의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들은 심장이 내려앉을만큼 특별한 사람입니다.'


건너편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께 좀 가져다 드려야겠어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오늘도 세상에 산재한 사무친 외로움들 용해되고, 응고되기를 반복하는군요.


'특히, 그녀가 내게 그 모든 이야기를 하는 것.

 얼마만큼이나 그녀를 좋게 만드는지를 느끼면서

 난 어떤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잘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중. -

덧. 주재료: 곰취와 쑥갓, 오징어 한마리.

      부재료: 양파와 당근 반개, 매운 고추 2개.

      데친물: 물 500ml, 식초와 맛술 두 숟가락,

                    매실청 한 숟가락, 소금 두꼬집

      양념장: 고추가루 한 숟가락, 고추장 두 숟가락,

                    다진마늘과 참기름, 설탕  숟가락씩,

                    식초 두 숟가락과 올리고당 반 숟가락,

                    참깨 적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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