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겨울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난밤, 창틀에 끼어 끈질기게 울부짖던 겨울의 날 선 바람들, 집요하게 내리꽂히던 송곳 같은 진눈깨비들. 산화되기 싫은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인 것만 같더군요. 몸을 동그랗게 말아 모로 누워 눈을 가늘게 뜹니다. 커튼 사이를 오가며 부서지는 먼지 입자를 세면서 잠시 게으름도 피웁니다. 이윽고 계절과 계절의 사이를 건너고 있습니다. 겨울에게 일별을 말해야 할 시간이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빛 내린 하늘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쭉 펴고서, 인내심 있는 봄에게 인사를 나눕니다. 황량하게 패인 겨울의 흔적이 여리디여린 봄의 향기들로 깨끗하게 지워지고 있습니다.
부서지는 모시빛의 햇살을 따라 ‘최백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느 때처럼 까만 커피를 내립니다. ‘걱정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무거웠던 육신과 밀도 높은 생각들의 중력에 저항하던 저는 봄빛을 따라 서서히 가벼워집니다. 맑은 물에 씻고서, 김 서린 하얀 거울을 손바닥을 펴 문지릅니다. 거울 앞에 멀뚱히 서있는 한 사람. 거울 속 그는 어떤 말을 하고 싶기라도 한 듯, 입을 조금 벌리고서 저를 빤히 응시하더군요. 눈두덩이 조금 마르고 광대뼈가 조금 드러난 말라버린 얼굴이지만, 하얀 흰자위와 눈가의 깊지 않은 주름들로 그가 회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절하게 찢어졌지만, 덧나지 않은 상처들, 손톱이 파고들어 핏물이 고인 살들이었지만, 어느새 단단해져 버린 굳은살들. 치유된 상흔들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침묵이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여전히 습관처럼 발끝을 보며 걸으시나요.
가끔씩 얼음 송이 같은 굵은 눈물도 흘리시나요.
쇼호스트의 말에 아무런 의지 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나요.
지금도 불면의 밤을 견디시나요.
아직도 떠오르는 태양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시나요.
그럼에도, 봄이 내려앉을 자리를 만들어 두셨나요.’
고민스러울 때면 머리카락을 만지듯이, 입을 크게 벌려 웃을 때면 손으로 입을 가리듯이, 몸이 습관처럼 반응하듯 휴일에는 서재에서 나무를 다듬고, 작물을 가꾸며 시간을 보냅니다. 자그마한 씨앗들을 흙과 섞고 축축한 손에 가득 쥐어 땅으로 돌려보내지요.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듯한 혹독한 겨울을 지나 찬란한 봄을 일으키는 건, 언제나 여린 것들로부터 시작됨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미미해 보이기만 한 검푸른 결정체에서 하나의 우주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이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는 파리하기만 한 허상을 쫓기보다는 저를 뒤따르는 소담한 냉이를 닮은 웃음들과 기쁨들을 오래 들여다보고 기억하려 합니다.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기억을 모아 저는 달빛 아래에서 단정한 책상 앞에 앉아 삶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 충만합니다.
얼마 전, 저에게 강의를 요청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이는 치유의 글쓰기라는 주제로 한 시간 정도의 강의를 저에게 부탁하더군요.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요청한 거라면 단호하게 거절했겠지만, 치유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 답했었지요. 신규임용자 강의와 치유의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며, 또 어느 문학지에서 의뢰받은 수필을 쓰고 고치다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합니다.
‘그저 으스러질 듯 아파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글이 쌓여 다른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은데, 이윽고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나의 벗이 되어버렸는데.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결국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어져 있을 나에게 가닿으리라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글을 쓴다는 건, 너에게 어떤 의미야. 한동안 눈물에 잠겨 글을 쓰던 친구에게 언젠가 제가 물었었지요. 그 친구는 잠시 머리칼을 꼬며 조금 먼 곳을 바라보다 옅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습니다.
‘마음의 세수가 아닐까.’
글을 쓰며 마음을 닦아내려 하지만, 가끔은 붙들고 놓지 않는 질긴 것들에게서 지친 듯한 패배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는 저의 말에, 그러니 세수인 거라던. 매일 씻어야 하는 거라던, 조금 더러워져도 씻어야 하는 거라던. 친구의 말에 고개를 수그리고 가만히 들었습니다. 친구의 정의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주홍빛 잔양(殘陽)이 감싸안은 친구의 옆 모습에 시선을 지나치다, 문득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새싹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라던, ‘롤랑 바르트’의 말이 바람에 실려 오는 친구의 향기를 뒤따랐었지요. 친구는 알고 있을까요. 본인이 저에게 새싹을 나눠주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쓰는 동안 재생, 치유, 회복. 이런 말들이 빛바랜 노트 아래로 배달되어 쌓이고, 쌓여갑니다.
하얀 달빛이 서재를 은빛으로 물들이는 밤. 백목련의 봉오리에 살이 올라 살짝 누르면 봄 향기가 터질 것만 같은 밤. 의뢰받은 치유의 글쓰기라는 강의 교안을 쓰기 위해 작설차 한잔을 내어 책상 앞에 앉습니다. 동그란 조명등을 켜고, 빛바랜 노트를 펼치고, 엄지와 검지로 갈색 연필을 꼭 움켜쥡니다. 한쪽 무릎을 굽혀 세우고, 한 팔로 무릎을 감싸안고서, 턱은 조금 멀리 밀어내고, 파르스름한 산허리를 응시합니다. 달빛은 고요하고, 구름은 몽글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창 너머의 빛을 바라봅니다.
치유를 떠올리다 지금 제가 가진 적요한 향기를 채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뎠던가. 또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다시 찾았던가를 생각합니다. 상실과 분노, 체념과 우울에 허우적거리며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골수가 흔들리던 그 시절, 솜털이 돋아나 반짝거리며 저에게 내밀던 하얀 손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몇 년 전, 많은 것들을 잃고서, 걷던 길조차도 보이지 않아 짙은 회색빛 콜타르의 늪에서 처절하게 저항하던 초여름의 어느날. 직장 동료인 J와 투명한 얼음 조각들이 가득 찬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서 앉았었지요. 지나치게 차갑다는 듯, 투명한 잔을 두 손으로 잡고서 조금씩 홀짝이며 그리 많은 말들을 서로에게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이해한다는 듯,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주름을 잡고서 가느다랗게 웃어주었지요.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늑골 너머에서 그악스럽게 명멸하듯 통증이 밀려오면, 지나가는 타인들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며 잠시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무표정함이 내려앉은 그의 느릿하고 담담한 문장에 잡고 있던 고무줄 가닥을 놓은 듯, 명치에서 올라오는 어떤 뜨거운 것이 안구를 뚫고 나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별것 아닌 그저 소소한 문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연하고 단순하고 단호하고 강렬했던 그 문장. 지금도 괜찮으니 살아봐. 라고 저에게 말하는 것만 같던 새싹 같은 그 문장이 맑은 빗방울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는 시간이 조금 흐른 어느날, 늦은 밤에 책 읽으며, 허전할 때 먹어보라면서 느닷없이 곶감 한 보따리를 손에 쥐어주고 돌아갔었지요. 지독스러운 외로움이 널려있는 차가운 방에 돌아와 그가 부모님과 함께 따고 말려서 손질했다는 주홍빛 곶감을 꺼내었습니다. 주홍빛 알전구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듯, 한 무렵을 어슬렁거리던 어스름은 밀려나고 있었지요. 달콤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고. 한 인간을 향한 응원의 언어에 형체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을 닮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햇살이 바삭한 가을날 감을 따고, 겨우내 얼음 같은 한기와 적막한 밤을 견디며 단맛을 만들었을 곶감. 목구멍과 내장을 거쳐 뼛속까지 스며드는 따스함에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처럼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목으로 울며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소소한 단어와 볼품없는 문장일지라도 누군가의 불행을 지우고 삶을 다시 쓰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는 책을 곁에 두고, 글을 지어먹기 시작해 어느새 지난해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곶감. 저의 삶에 주홍빛 변곡점을 찍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허리를 곧게 펴고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더 이상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타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구조활동이다.’
「롤랑 바르트」
겨우내 덮여 있던 말라버린 가지들과 건조된 잡초들의 잔해를 걷어내니 냉이들이 묵은 밭에 저항하며 일어나 있더군요. 참혹한 겨울을 견뎌내고, 마알간 얼굴로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냉이는 가장 빨리 혹독한 상처를 치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이를 캐내어 맑은 물에 우리고 잔뿌리를 다듬으며, 고통의 근원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저의 집착이었음을 생각합니다. 상처는 언제나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안에서 죽어버린 풀이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며, 저를 잠식하곤 했지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침묵 안에서 글을 쓰며 상처를 지긋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문장들의 그물을 펼쳐 검푸른 빛으로 파닥거리는 통증의 근원을 건져 올리면,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애틋한 감정들과 소중한 기억들이 함께 올라오더군요. 온전히 행복했다고 할 순 없지만, 분명 좋았던 한 시절의 기억들. 심연 속에서 숨죽여 살아가던 어떤 서러운 것들을 문장으로 남기고 투명한 햇살 아래 내어놓으니 사무치게 그립기만 한, 한 시절이 냉이처럼 동그래진 몸을 펴고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지나 온 계절들의 수많은 낮과 밤들 사이에서 냉이를 닮은 연녹빛 새순들이 널려있더군요. 마음과 감정의 치유는 고통스러운 기억들 속에서 오두마니 서성거리는 자신을 힘껏 끌어안아 데려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멸치 육수에 집 된장을 한 숟가락 넣고서 불을 지핍니다. 하얀 김과 구수한 냄새가 서재를 채우고, 붉은 혈관을 따라 닿을 수 없는 곳까지 흐릅니다. 평온합니다. 참으로 평온하군요. 다듬어 둔 냉이와 두부, 어슷하게 썰어 둔 대파와 팽이버섯을 넣고 조금 더 끓입니다.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는 냉이의 꽃말처럼, 냉이된장국의 향기는 봄의 전부를 선물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지독한 겨울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봄의 향기는 치유였지요. 어쩌면 글을 쓰기 시작했던 주홍빛 알전구들이 매달리던 밝고 환한 밤의 그날, 봄은 이미 저의 곁에 누워 주었고, 저는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이된장국과 쌀밥 한술로 몸을 데우고, 냉이의 잔향이 머무른 책상 앞에 다시 앉습니다. 그리고 깊고 까맣기만 하던 긴 터널을 이제는 충분히 통과했다고 적습니다. 지금은 한 아이의 어미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J이지만, 그는 저를 존립하고 보행하게 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려 저의 책을 부칩니다.
‘침몰해가던 시간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당신의 문장과 곶감 덕분에 그래도 좀 더 살아보자고 결심 같은 것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는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마디게 발음하며 책 표지 안쪽에 검은 만년필로 반듯하게 적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런 말들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있노라고 읊조립니다. 비록 듣는 이가 거울 속 한 사람뿐일지라도 말입니다. 절망에 잠긴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