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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순 Nov 13. 2023

10월의 마지막 날에 겨우 당도했을 때

새가 새겨놓은 허공의 길은 새의 최선이었어

장미 줄기가 담장을 탈출하여 써놓은 질문들도

모두 최선의 메마른 문장이었어     


담쟁이는 울타리 안과 밖의 질문에 충실하려고

넝쿨을 뻗어 오늘만큼의 해답을 쌓아 올리고    

 

가을의 허공을 잘게 부수다 질문 아래로 숨어드는 귀뚜라미 

    

그곳이 자신의 무덤인지 모르고

차오르는 질문을 마음대로 내뿜는 길가의 풀들이

노을의 아우성을 들으며 서쪽으로 순진한 목을 늘일 때 

    

몸 밖으로 새어 나오는 호기심을 막을 새도 없이

마음껏 재잘대며 빛의 여운을 들이마시는 아이들

막대사탕을 빨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노을이 어둠의 제국에게 저항하는 황홀을 습득하고 

     

하루치의 질문을 소비한 대가로 배가 고픈 어른들

익어가는 가을을 따서 맛볼 여유도 없이

전쟁을 겪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걱정하며

어둠의 포환을 피해 각자도생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어  

   

연락 끊긴 자식을 기다리는 이웃 여자의 핏빛 한숨

단말마의 비명을 내뿜으며 

느닷없는 폭탄처럼 허공이 잎들을 떨어뜨릴 때

     

방송에선 달콤한 거짓말에 중독된 위정자가

국민의 눈물로 채워진 술잔을 들고 웃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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