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수야, 순옥 누나 알지? 얼마 전 어머니 장례식에 왔던..., 너와 통화하고 싶다기에 전화번호를 줬는데 받지 않는다며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 줄 테니 네가 해보렴.
- 수, 순옥, 그 언니가 왜요?
- 너의 책에 관심 있는 것 같더라. 감동있게 읽었다며 몇 번이나 언급했던 걸 보면.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년 전 어머니 장례식장에 나타난 그녀를 보았을 때는 흡사 귀신을 보기라도 한 듯 정신이 하얘졌었다. 같은 동네 태생이긴 하지만 일가친척도 아닌데다 혜수네 7남매와 그녀 형제 8남매 중 어느 한 명도 동기가 없어, 그녀의 조문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빈소에서 조문 인사를 나누자마자 허둥지둥 몸을 숨긴 채 그녀가 가기만을 기다렸다.
한때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했었다. 철마다 상품을 바꿔가며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다. 교통오지에서 거의 자급자족하고 살았던 산골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방문은 세상을 엿보는 통로 그 자체였다고 한다.
동네마다, 집집마다 다니는 동안 집안 사정을 알게 되며 우연히 처녀총각 소개한 것이 결혼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첫 연결이 결실을 거두자 너도나도 어머니에게 중매를 부탁했고, 어머니도 자연히 그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 수많은 짝을 탄생시켰다.
순옥 언니도 그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 근교 방직공장에 다니고 있던 언니를 전기조차 들지 않는 심심두메산골 어느 장남에게 소개하여 결혼에 이르게 했다.
그 언니가 결혼한 이듬해 합천댐 건설이 발표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천수답과 밭뙈기 모두 수몰 예정지구로 편입되어, 터전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상금으로 자신이 다녔던 공장 근처에 다 스러져가는 집 한 채와 천막 쳐진 시장 한 칸을 사서 이사를 하였단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 했던가!
이사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이 대구시로 전격 수용되는 행운이 겹쳤다. 광역시에 걸맞은 인프라가 구축되며 인구 유입이 급속도로 늘었다. 시장이 황금알 낳은 거위로 변했던 것이다.
순옥이가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는 소문은 이미 소문이 아니었다. 그녀 친정집도 스위스 부자 동네나 어울릴 법한 아름다운 전원주택으로 탈바꿈했고, 초·중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그녀 형제들 하나같이 늦깎이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신분상승했다.
친정 방문 때마다 자신을 중매한 혜수 어머니를 찾아 선물과 돈 봉투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에, 혜수네 형제들도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던 터였다.
이런저런 연으로 어머니 장례식에 왔다는 사실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혜수 개인에게 연락할 일이 ‘그 일(!)’ 말고는 없다는 데, 아득한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책이야 서점에서, 아니면 아이들을 시켜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오빠에게 연락받은 이상 모른 체할 수 없어,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채 전화를 걸었다.
- 언니, 김혜수예요.
- 하이고오 이기 누고? 작가와 직접 통화를 하다니 꿈만 같다.
-흐흐... 아직 무명작가인데요 뭘.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나는 태어나 책 한 권 다 읽은기 니꺼 뿌이다.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네에 고맙습니다. 흐흐...
혜수는 '순옥언니가 어머니 장례식에 다녀가신날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점, 언니의 성공이 본인 일처럼 기쁘다'는 말로 그녀의 다소 호들갑스럽게 느껴지는 칭찬에 갈음했다.
- 오늘날 잘살게 된 기 모두 너거 엄마 덕 아이가. 죽어도 아지매 은혜 몬 잊는다.
혜수는 이제나 저제나 그 이름(?)이 나올까, 안절부절못하는 심정으로 그녀 말에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가며 불편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조바심 내던 그때, 비로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름이 올려졌다.
- 우리 시(媤)아제(阿弟) 박종훈이라는 사람 알제? 니 전화번호 달라 해쌌는데 조도 되겠나? 우리 아아들이 요새는 남의 전화 함부로 주면 큰일난다 싸서, 너거 오빠한테 물어보고도 안 줬다.
-!
- 다 아는 처지의 고향사람끼리, 니가 작가됐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 아아 네, 그, 그럼요, 근데 그분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을까요?
- 집안 모임에서 니 이야기했더니 그 자리서 휴대폰 들고 책 산다 해쌌더마, 다 읽었는지 다시 전화가 왔더라.
- 네에.
- 그 아제가 대구시 ○○구 지자체 선거에 출마한다고, 대구 사는 니 친구들 한 명이라도 도움받으려고 하는 거 아이겠나?
전화번호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다른 대화로 빙빙 돌다 어물쩍하게 끝났다.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순옥 언니 체면도 있는 데다 같은 군(郡) 출신으로 혜수 전화번호를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옥 언니가 벌써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그에게서 전화가 올까 초조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다행히 전화는 오지 않았다.
잠깐 그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지려 할 때 낯선 밴드 초대장이 도착했다. 박종훈이 보낸 거였다.
‘쿵!’ 내려앉는 심장을 다잡으며 그의 카톡 프로필을 훑었다. 부인과 남매인 두 자녀가 다복해보였다. 나머지 사진은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이력들이었다.
수락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망설이며 며칠을 보냈다.
"박종훈입니다. 책 잘 읽었습니다. 제 평생 소설책 한 권 완독하게 해주신 첫 저자이십니다. 밴드 수락해 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나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불편한 사람과의 1:1 채팅,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그 역시 혜수의 프로필을 확인했을 터였다. 그를 의식하며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살펴보니 정작 남편의 사진이 없었다. 부랴부랴 번듯한 남편 사진 몇 장을 골라 전면에 배치했다. 어쨌거나 거리감을 느끼길 바라며.
며칠 후 톡이 왔다.
"밴드 수락 부탁드립니다! 크게 실례되지 않는다면요!"
다분한 명령조로 느껴졌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발가벗은 알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최소한의 옷이라도 걸치려면 무리 속에 섞이는 게 나을 것 같아 기어이 방으로 들어갔다.
밴드는 지자체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는 그의 이력을 홍보하는 공간이었다. 일만여 명 넘는 사람들이 그를 떠받치며 북과 징, 꽹과리를 쳐대는 분위기였다. 상단에 소개된 그의 이력을 살피며 ‘피익’ 웃음이 나왔다. ‘D대학교 철학과 졸….’
며칠 동안 나갈 타이밍만을 엿보다, 어느 야심한 밤을 틈타 조용히 몸을 빼냈다. 밴드 특성상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 턱이 없었다.
다음 날 혜수의 뒷덜미가 다시 붙들리고 말았다. ‘네가 한 짓(?)을 알고 있으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엄포라도 놓는 듯했다.
다시 보낸 초대장에 멱살 잡힌 심정으로 들어갔다.
오래전 서울에서 열리는 고향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그를 보고는, 삼십육계 줄행랑치며 행사장을 뛰쳐나왔다. 그 후 고향의 어떤 행사에도 발걸음하기를 꺼렸던 이유는 그의 존재가 지뢰밭처럼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박종훈!’
이십여 년 동안 그가 채운 목줄에서 혜수는 자유롭지 못했다. 조금 느슨해져 풀려났나 싶어 달아나면 여전히 팽팽한 줄이 그녀를 당겼다. 줄은 선명한 붉은 낙인, 주홍글씨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기 전 일이다. 남편과는 고등학교 때 펜팔로 알게 된 사이로, 3년간 편지를 주고받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만나고는 곧바로 헤어졌다. 서로 이상형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는 대학으로, 혜수는 고졸 여사원으로 각기 다른 길을 갔다.
가끔 혜수의 회사로 그의 원망 섞인 편지가 날아들곤 했다. 혼자만의 착각, 상상한 프레임에 스스로 빠졌다는 둥, 술주정하듯 횡설수설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한가하게 연애 타령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던 혜수는 그의 편지 따위 무시한 채 빈 시간마다 사내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대학에 가리란 희망을 품은 채.
꿈은 꿈일 따름이었다. 물오리처럼 죽어라 수면 아래서 물갈퀴질을 했으나 수면 위로 작은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흐르는 세월에 속수무책으로 나이를 도둑맞아, 어느새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어선 노처녀 대열에 합류했다.
친구들 하나둘 결혼하여 첫째 둘째 돌잔치 소식이 보내오고, 직장에서마저 앳되고 젊은 여직원들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리는 기분을 어쩌지 못할 즈음, 백마 탄 남자가 나타났다. 그 옛날 펜팔하던 사람이었다. 청춘의 물이 뚝뚝 떨어지던 시절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주고받았던 편지가 밀알이 되었던지, 두 사람은 보자마자 불이 붙었다. 내일모레가 서른 살이었던 동갑내기 두 사람 다 결혼이 급했다. 남자는 결혼하여 유학 갈 예정으로, 여자는 사방이 콱 막힌 퇴로에서 오로지 그 길만이 통로였던 까닭이다.
십여 년 동안 훌륭한 스펙으로 몸을 다진 근육질 남자와 한 의자에서 운동은커녕 겨우 숨쉬기만 해온 여자. 두 사람의 저울추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남자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유리 구두를 신고 신데렐라 춤을 추고 있던 혜수는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생명의 끈을 놓고 싶을 만큼 삶의 의욕을 잃은 터에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회사 사표는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퇴직금 정산을 비롯해 모든 뒷일을 오빠에게 맡긴 채 시골로 들어가 몸져눕고 말았다.
수개월 간 방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딸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혜수를 본격적인 중매 시장(?)에 내놓았다. 몇 군데서 선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아예 귀를 닫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비장한 목소리로 혜수를 불러 앉혔다. 탐 나는 집안에서 선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면에서 가장 성공한 집안 중 하나로 총각 아버지는 현직 중학교 교장이며, 7남매 중 막내아들인데 위의 형제들이 모두 판사, 의사, 교사들이라고 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가야지,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재취자리로 넘어간다.’는 등으로 매일같이 들들 볶았지만 혜수는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었다.
달래다 꾸짖다 윽박지르다, 온갖 묘수를 다 써도 꿈쩍하지 않는 딸에게 어머니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당신이 무너지는 말을 했다.
- 생때같던 자슥을 에미란 년이 저렇게 만들고도 살아 있는 게 죄다. 울매나 더 어만 꼴을 보라고 너까지 이러노?
남동생은 혜수가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집안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터널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대기업 들어간 끈이 졸업장이었을 테니, 졸업의 증거만은 확실하리라.
동생과 연결되는 핏줄은 지독하고도 잔인했다. 인생 마디마다 옹이로 박히며, 그녀 삶이 송두리째 지배당했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조차 그 아래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어머니가 그를 치료한다며 전국 방방곡곡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기행(?)이 멈춘 건 동생 스스로 취직하면서부터였다.
- 볼게요!
더는 어머니의 신파를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 앞가림만으로도 힘든 시간이었다.
- 남자 학교는요?
- 대구 S고 졸업했다더라. 남자는 신체 건강한 기 제일이다.
고등학교 이름이 생소한데다 부잣집에서 대학에 못 간 걸 보면 익히 수준이 짐작되었다.
당시 혜수는 남자의 등급(?)을 학벌로 재단하던 터여서 천하 잘난 사람도 본인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터였다.
- 그런 집에서 뭐가 아쉬워 우리 같은 집과 사돈할라 카겠노. J여고 졸업했다는 거 하나로 그란다더라. 아버지가 중학교 선생이니, 그 학교가 얼마나 맹문인지 알고도 남겠지.
애초 어머니는 혜수를 대구시 직물공장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로 진학시켜 오빠와 남동생 학비 바라지를 하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명문 고등학교 몇 명 합격’의 수치를 위한 적임자로 담임과 교장까지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를 설득한 끝에 마지못해 승낙한 터였다.
동생의 사고 이후 어머니는 혜수더러 읍내에 있는 여상으로 전학하라고 닦달했다.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 봤자 시골 여상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도시 생활을 더 이상 뒷바라지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을 듣지 않자 어머니는 더 이상 관심도 지원도 하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혜수 스스로 겨우 졸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상 졸업 후 은행에 다니는 다른 집 딸들 급여와 근무 조건 등을 비교하며 혜수의 속을 있는 대로 다 뒤집었다.
어머니에게 J여고는 막내아들을 저렇게 만든 이유 중 하나로, 원망과 응징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J여고’가 귀히 쓰임 받는 존재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줄곧 대구에서 선을 보라고 했다. 수개월간 세상과 담 쌓은 듯 방구석에만 들어앉은 딸을 이 기회에 바깥으로 끌어내려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혜수는 대구 시내 곳곳 첫사랑과도 같은 그 남자와 데이트했던 장소들이 지워지지 않아 한 발짝도 떼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