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혹은 무늬

일상에서 생각 줍기 #1

by 이룸

언제부턴가 균열된 모습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갈라진 벽, 갈라진 나무 껍데기, 갈라진 아스팔트……. 언제부턴가라는 건 내 삶에서 자꾸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감지하면서부터이리라, 아마도. 파릇파릇하던 시절에는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다.


일찌감치 탈모를 감지하였고, 눈이 안 좋아져서 안경을 쓰게 되었고,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지를 않나, 허리가 아프고, 이가 벌어지고, 흰머리가 생기고, 발톱무좀이라는 것도 삶의 영역에 침범했고, 주름이 자꾸 늘어나고…… 정말이지 끝이 없다. 서글퍼진다. 거울을 보기가 싫어진다.


어느 날 문득 어떤 현상이 발견된다. 엘리베이터 거울을 통해 머리 윗부분이 휑하니 빈 것을 본다든지, 찰떡을 먹다가 이가 깨진다든지, 양말을 벗으려는데 갑자기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리를 펼 수 없게 된다든지…….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온 상황을 느끼지 못하거나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일찌감치 발견하고 일찌감치 조치를 취했으리라. 심각해진 상황에 맞닥뜨려서야 후회하고 한탄하는 건 대부분의 인간이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파국을 맞게 되는 건 아니다. 파국의 조짐은 서로의 다름을 인지한 순간부터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와 다른 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야, 그리하여 되도록 상대방에게 나를 맞춰 주려고 노력한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수는 없으리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내가 뜻하는 대로 만들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관계의 균열이 시작된다. 그런 상태에서 균열의 틈을 메우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틈은 점점 간격을 넓혀가고, 결국엔 관계의 단절이 불가피해진다.


사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제의 조짐이 보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영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그 사업을 접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균열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예기치 않게 운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작은 것에 연연하면 큰 것을 잃는 법이다.


균열 없는 삶은 없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겪게 마련인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러니 균열이 발생했다고 해서,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면서 억울해 하거나 가슴 아파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열이라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인식과 해석과 대처에 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균열은 시간이 선사하는 멋진 선물이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하고, 인생과 세상의 오묘한 이치에 눈을 뜨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듯, 균열은 우리네 삶을 다채롭게 장식해주는 황홀한 무늬가 될 수 있다.


균열.jpg 2014년 1월 부안군 곰소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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