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그와 나는 말없이 곱창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만 가지고 사업을 하는 건 너무 무모해 보이는데요, 갈수록 시를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에서…….”
“흐흐흐, 그렇소. 이 세상은 시로부터 한참을 멀어졌소. 시가 죽어간다는 건 세상이 죽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렇지 않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게 다 문단 권력자들이 시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들 소수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시로 인정을 하다 보니, 어렵게 비비 꼬아야만 시로 받아들여지게 된 거요. 온갖 이론과 논리로 무장을 하고서 말이오. 그러니 자꾸만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 것 아니겠소? 시라는 건 본래 민중의 진솔한 감정이어야 하는데 말이오.”
나는 다시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피해망상’이라는 단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취기가 올라오는지 몸이 흔들흔들했다.
“그러고 보면 말이오, 이 세상을 망친 건 조선이라는 나라요.”
갑자기 웬 조선? ‘논리의 비약’이 오물오물 씹혔다. 그가 잔을 비웠고, 나는 또 소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그의 참모 정도전이 세상을 망쳐놓은 거요.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세상이 고리타분하지 않았소.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며 살았단 말이오. 아, 물론 신분적 한계는 있었지만, 그거야 당시에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으니 논외로 칩시다. 지역마다 다양한 색깔과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있었소. 그러던 것을, 이성계와 정도전이 유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떠받들면서부터 숨 막히는 세상이 된 거요. 중앙 집중의 승자독식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말이오. 일이 백년도 아니고 오백년 동안 그랬으니 사람들 마음이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지. 그로부터 백 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그 영향이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는 거요. 사람들 마음에 내면화되어서 말이오. 난 고려 왕족의 후손이오. 그래서 더더욱 분통이 터지오.”
이건 또 무슨 얘기란 말인가, 고려 왕족의 후손이라니……. 왕규라는 이름으로 보건대,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지금 시대에 그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싶은 생각 또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안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술만 마셨다. 몸이 흔들거리고 있었지만 혀는 꼬이지 않았다.
“난 고려를 부활시킬 거요. 아니,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니, 고려정신을 부활시키려 하오. 그러기 위해서는 시를 되살리는 게 우선이오. 고려의 진솔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시들을 다 없애버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시들만 골라 자신들의 이념에 꿰어 맞춘 조선 관료들의 작태를 지금의 문단 권력자들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이 말이오. 난 시인이오. 진정한 시인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법이오. 지금은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올 것이오. 그게 좀 빨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니, 아니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소. 죽은 지 백 년, 이백 년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는 예술가들도 많지 않소.”
그가 꿀룩꿀룩 소리를 내며 잔을 비웠다. 나도 잔을 들어 소주를 마시고 마지막 남은 곱창을 입에 넣었다. 세상에, 시를 되살려 고려정신을 부활시킨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상, 현실, 야망, 절망, 외로움, 자존심, 자부심, 자아도취 같은 단어들이 입 안에서 오물오물 율동을 했다.
계산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그가 내 몸을 붙잡고 앉게 했다. 그리고 종업원을 부르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내밀었다.
“맥주 한 잔만 더 합시다.”
곱창집을 나서며 그가 말했고,
“그럼, 이번엔 제가 사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아니오. 돈 걱정은 마시오. 내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렇소.”
끄억끄억 웃음을 뿜으며 그가 말했다. 그리하여 근처에 있는 맥줏집에 들어가 병맥주와 북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맥주를 한 컵 비운 다음 그가 또 얘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는 것, 아버지가 가전제품 부품공장을 운영했는데, 일하는 사람이 20명이 넘을 정도로 잘 되었다는 것,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하고 나선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 사업을 거들며 시를 썼다는 것, 선을 봐서 결혼을 했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는 것, 아버지가 사업 확장을 위해 큰돈 들여서 자동화 기계를 구입했다는 것, 그 전까지는 원시적인 수작업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 시점에 IMF라는 게 터지면서 자금줄이 막혔고, 그리하여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 결국 공장과 집을 다 팔아치우고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는 것, 그 후유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돌아가시기 전에 족보를 보여주어 왕건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대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출판사에 취직했으며, 그때부터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것, 출판사에서 직원으로 몇 년 지내다보니 자꾸만 마음이 움츠러들고 왜소해지더라는 것, 그래서 그만두고 품은 뜻을 펼치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다는 것, 그러나 쫄딱 망하고 빚을 지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빚을 갚기 위해 막노동에 퀵서비스에 노점상에 대리운전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 대리운전을 하고 있을 무렵 한때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을 손님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의 사장이며, 그 사장의 주선으로 물류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