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한 사람도 2등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등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떠한 분야건 2등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도, 알아야 된다고 강요받는 정보도 너무나도 많다 보니 1등만 기억하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좋건 싫건, 더럽건 깨끗하건, 사실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한다.
1등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이미 정해진 게임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1위를 하는 것. 혹은 내가 1위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법. 지난주에 내 눈에 들어온 3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1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 번 알아보자.
1.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래퍼 더콰이엇을 리스펙 하고 있다. 그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랩과 돈의 간격을 좁힌 놈'이라는 가사로 대변되는 그의 철학과 행보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지만 돈이 안 되었던 '랩'을 어느샌가 돈이 되게 만든 사람. 나다움으로 고객의 마음을 열어 수익을 창출하고 비즈니스를 만든 사람. 현시점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런 그가 누군가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인터뷰어가 심상치 않았다. 한눈에 힙합 마니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봉현이었다. 내가 읽었던 힙합 관련 책의 저자이기도 했다.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모임장으로 있는 플랫폼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만나게 되었다. 그의 공간에 도착하자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10대 때 접한 음악, 게임, 영상 등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김봉현이라는 사람이 공간을 통해 자기소개를 해오는 듯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집요하게 판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임 후에 그와 따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의 일관된 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일'은 그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기존에 있던 직업명인 '음악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로 본인이 하는 일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힙합 평론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닌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유일무이한 직업명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본인의 게임을 만들었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2. 클립 하나로 집을 사겠다는 청년
아주 저렴한 물건을 그것보다 조금 더 비싼 물건으로 차근차근 바꾸어 최종적으로 집을 사는 일.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있었던 일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0여 년 전에 번역서가 없는 외국 서적에서 해당 사례를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기발한 발상에 대담한 실행력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최근 이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한국인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년은 진짜 이 시나리오가 된다고 믿고 실행하는 듯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집으로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에게는 잃을 게 없는 시도였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으니 말이다. 해외에는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시도되지 않은 게임을 하는 청년이었다.
3. 컷트의 일인자
찰나의 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로 걸어가는데 내 왼쪽 눈에 '일인자'라는 문구가 걸렸다. 자세히 보니 '컷트의 일인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위로는 '제5회 전국이용기능경진대회 대상수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보다 위를 쳐다보니 간판에 금메달 모형과 금메달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인자임이 분명했다.
오구라 기조라는 철학자는 '장원'과 '일본 최고'에 대해 비교해서 말했다. 조선시대에는 '장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1년에 1등은 한 명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은 이와 다르게 쪼개는 대로 1등이 되는 '일본 최고'라는 개념이 있다. 우동 1등이 있을 수 있고 카레우동 1등이 있을 수 있고, 24시간 우동 1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컷트의 일인자는 이발사가 할 수 있는 많은 행위 중에 '컷트'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일본 최고'이기도 하고, 특정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는 점에서 '장원'이기도 하다. 쪼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게임을 만든 사람이고,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점에서는 기존 게임에서 1등을 한 사람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일인자임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