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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15. 2022

소박하지만 확실한 '사회생활' 잔기술

소확잔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깨달은 것은 "누가 홈런을 많이 치느냐"보다 "누가 아웃당하지 않고 출루를 많이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엄청나지만 불확실한 큰 기술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잔기술, '소확잔'사회생활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소확잔을 지체 없이 바로 공유해 보도록 하겠다.



1. 중요한 보고는 오후 2시에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사회생활에 대해 별다른 조언을 하지 않으셨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공무원 생활과 (사기업) 회사 생활은 다를 거라고 짐작하셨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중요한 말씀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콜라의 원액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려는 듯한 비장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중요한 보고는 꼭 점심 이후에, 오후 2시 정도에 해라



본인의 경험상 점심 먹고 나른할 때에 상사들이 가장 너그러워진다는 것이었다. 꽤나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버지 말씀대로 중요한 안건을 이야기하거나 보고할 때는 가능한 오후 2시경에 하곤 했다. 플라세보 효과(가짜 약도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이 있으면 효과가 생긴다는 현상)인지는 몰라도 결과는 대부분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 아버지가 경험으로 체득한 내용이 연구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죄수의 가석방 청원을 판결할 때 식사나 간식을 먹은 직후에는 판사의 판결이 더 너그럽다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 스쿨 조나단 레바브 교수가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했다. 교수는 이스라엘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가석방 요청에 대한 법정 결정 1112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판사가 간식이나 식사를 한 직후 가석방 판결률은 65%로 높은 반면, 점심식사 전 등 배고픔을 느끼는 시간에는 가석방률이 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국민일보, '판사가 배부르면 판결 너그러워져', 20110413 -



2. 마감 시한이 있는 업무는 예약 메일로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슬램덩크의 불꽃남자 정대만 마냥 열정이 넘쳤다. 마감 시한이 있는 일도 그보다 훨씬 일찍 끝내야만 직성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설렁설렁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들보다 늘 성과가 부족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는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신입사원이라 일에 서툴기 때문이라고 마냥 치부하기에도 뭔가 께름칙한 것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열일하고 있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너무 빨리 하지 마. 그러면 바쁘기만 해.

선배의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감 시한까지 일을 미루면 '자이가르닉 효과(완수하지 않은 일은 기억회로에 계속 남아있어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효과)가 발생해 일의 능률이 떨어질 것 같고 내 식대로 너무 빠르게 하면 제자리걸음일 것 같았다. 답이 없는 문제처럼 보였다.  


https://brunch.co.kr/@kap/33


그러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요청 업무는 바로 해서 마치되 보내는 시간을 마감 시한에 맞추는 것이다. 바로 '예약 메일'로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마감 시한보다 훨씬 빠르게 업무를 완성해서 줄 때와 예약 메일로 마감 시한에 딱 맞출 때의 상대의 만족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마감시한을 딱 맞출 때 상대의 만족도가 더 높아진듯한 느낌도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미리 주기보다 마감시한에 맞추어 주면 상대는 내가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더 긴 시간을 들인 것을 더 많은 노력을 들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마감 시한보다 일찍 주었을 때는 늘 수정 요청을 받아서 일을 여러 번 하곤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상대방은 "더 나은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막연히 수정 요청을 했던 것 같다. 예약 메일을 활용한 이후부터 일의 능률과 상대의 만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3. 피드백을 줄 때는 '그리고'


후배가 생기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 선배로서 비판적 피드백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서 비판적 피드백이지 후배들 입장에서는 '지적질'로 느껴질 것이 뻔했기에 말을 하기가 항상 조심스러웠다.


처음에는 정답처럼 알려진 '칭찬'으로 시작해서 '비판'으로 마무리 짓는 방법을 써보았다. 그러나 후배들은 내가 칭찬을 하다가 '그러나' '그런데'라는 말 하는 순간부터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나 역시 선배의 지적질을 들을 때 '그런데' 같은 단어가 나오면 "앞의 칭찬은 이것을 위한 빌드업이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 그들의 입장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입장을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신박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그리고' 화법이었다.


칭찬 이후 피드백으로 전환할 때 문법상 어색하더라도 '그리고'로 완충작용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진행한 것 너무 잘했고 B 부분은 다음에 이렇게 보강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처럼 말이다. 한 모임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심리학 전공자분이 본인 전공에서 비슷한 내용을 배운다고 말해주었다. 역시 내가 역사상 최초의 발견자일리는 없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언어는 참 묘한 힘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1970년대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었다.

대학생들이 복사기를 사용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다음의 세 가지 말을 하면서 먼저 복사기를 쓸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성공률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이해를 위해 의역 및 축약을 했다)

1. 복사기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2. 복사를 해야 돼서 그러는데 복사기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3.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복사기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이유 없이 먼저 사용해도 되냐는 1번의 성공률은 60%, 어느 정도 이유가 있어 보이는 3번의 성공률은 94%였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다만 놀라운 것은 터무니없는 이유의 2번의 성공률이 무려 93%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내용보다는 "~서 그러는데 (Because)"가 있느냐 없느냐에 더 집중을 했던 것이다.

참조 문헌: Jessica Stillman, "More Lessons in Persuasion: Using 'the Power of Because'", CBS News, 20080707


이처럼 내용과 상관없이 '전치사' '접속사'만 바꾸더라도 훨씬 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단 한 분라도 나의 '소박하지만 확실한 (사회생활) 잔기술'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될 것 같다. 



Photo by Annie Spar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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