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곳이 있다. 왠지 센스가 느껴지는 곳. 반대로 삐까뻔쩍한데도 왠지 모르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곳도 있다. 어떤 차이가 이러한 느낌을 만들까? 이는 디테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머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몸은 체감하는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가 전체적인 느낌을 바꿔 놓는다. 매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 화장실에 비치된 손 세정제 브랜드, 조명의 색상과 강도, 식기의 재질, 책상과 의자의 높이 등등. 이러한 소소한 감각이 누적되어 우리의 인상을 좌우한다.
1. 빨간 양동이
연예인의 한남동 단골 술집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방울과꼬막’.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핫플을 놓칠 수 없지 않겠는가? 주말에는 웨이팅이 극악이라는 말을 들어서 평일을 노려보았다. 비 오는 평일 오후 6시 이전에 가서 그런지 다행히도 자리가 있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해서 그랬을까, 첫인상은 특별할 게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술집이었다. 하지만 초반의 평범한 인상은 음식이 나오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음식이 맛있었다. 모든 안주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특별한 맛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누구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이어서 소주와 맥주를 시켰는데, 얼음이 가득한 빨간 양동이(칠링 바스켓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양동이였다)에 담겨 제공되었다. 칠링 바스켓은 대개 스테인리스 재질이거나 반투명한 플라스틱인 경우가 많은데, 청소할 때 쓸법한 빨간 양동이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도 적절했다. 가게의 분위기와, 소주와 맥주라는 서민적인 술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같은 아이템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2. 비 오는 날에는 메가커피
날씨가 점점 동남아 날씨처럼 변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한다. 비가 내리더라도 시원해지기보다는 한증막에 들어온 듯 더 덥기만 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스콜(squall)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갑작스레 우산을 사야만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우산의 디자인은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우산이 우선순위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구매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매장 수가 많아 '접근성이 높고' ‘저렴한 가격’이라는 이미지를 갖춘 프랜차이즈라면 이러한 비즈니스에 적합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새롭게 떠오르는 강자가 ‘다이소’이다. 매장 수도 많고 저렴한 이미지의 대명사이니 말이다. 다이소는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의외의 브랜드도 우산을 판매하고 있었다. 바로 ‘메가커피’였다.
‘커피’가 주력인 메가커피가 우산을 판매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깊이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추측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고객 트래픽 증대’, 둘째는 ‘홍보 효과’다. 고객이 많이 찾아도 회전율이 떨어지면 매출과 이익이 같이 떨어진다. 특히, 커피 한 잔만 시키고 하루 종일 매장에 머무는 고객이 많다면 카페 사장님의 마음은 타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메가커피는 다르다. 대부분의 매장이 테이크아웃 전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많은 손님이 오면 그대로 매출로 이어진다. ‘우산’은 트래픽을 늘릴 수 있는 좋은 유인책이다. 두 번째로, 메가커피의 로고가 크게 그려진 우산을 손님들이 들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광고가 된다.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에서도 설명했듯이,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쇼핑백’이나 ‘기념품’은 이동하는 옥외광고이자, 고객 후기이자, 쇼핑몰 배너 광고 역할을 한다. 여러모로 최고의 광고라는 말이다. ‘우산’을 판매한다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메가커피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 같다.
3. 그냥 숙성 흑돼지가 아니라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돼지고깃집에서는 ‘흑돼지’ 앞에 공통적으로 붙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숙성’이다. 제주도에서 대박을 내서 서울까지 진출한 ‘숙성도’는 가게 이름부터 ‘숙성’이다. 이제는 모두가 ‘숙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쉽게 말해 '숙성'이라는 세일즈 포인트만으로는 고객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발걸음을 이끌기도 어렵다.
이번에 제주도에서 방문한 돈어길은 ‘숙성’에 하나를 더했다. 바로 ‘숫자’다. 14년 산 발베니, 21년 산 발렌타인처럼 비싼 위스키를 연상케 하는 ‘14일’, ‘21일’이라는 숙성일자를 메뉴명에 붙였다. 이 숫자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수많은 숙성 흑돼지 전문점 중 돈어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매장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숙성 고기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게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현무암 벽과 세 개의 나무기둥으로 이루어진 제주도 특유의 대문인 정낭으로 테이블을 구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웨이팅이 긴 집은 역시 디테일이 달랐다.
* 마무리
작은 디테일이 모여 고객의 경험을 완성하고, 그 경험이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한다. 이런 세심한 디테일이 ‘핫한’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의 차이를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이 작은 디테일을 통해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에 더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