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⑥ 평! 화!

내게 강 같은 평화

by Karpos Institute

어떤 사진 한 장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손에서 누군가의 손으로 오가는 증서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진위 여부와 별개로, 그 이미지가 내게 던진 질문은 분명했습니다.
평화는 거래될 수 있는가.


저는 곧장 익숙한 문장을 찾아보았습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 16번, 평화·정의·강력한 제도 구축. 국제개발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언어입니다.


Goal 16. Promote peaceful and inclusive societies for sustainable development, provide access to justice for all and build effective, accountable and inclusive institutions at all levels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 증진, 모두에게 정의를 보장, 모든 수준에서 효과적이며 책임감 있고 포용적인 제도 구축
(번역출처: https://www.ncsd.go.kr/unsdgs/goals)


그런데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생각이 ‘땅’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언제부터 내 삶의 평화를 SDG 16번의 문장 속에서 찾고 있었던가.


제가 이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개발이 국제기구의 외교 프로토콜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받아들여지고, 삶에서 만들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금 저는 높고, 저 편에 있는 개념을 붙들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평화가 물체처럼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 역시 평화를 “먼 곳의 거대 개념” 혹은 "달성해서 성취해야야 만 할 것"으로만 떠받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며칠 동안 글의 방향을 다시 붙들어 보며 떠오른 문장이 있었습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개신교 찬송가로 널리 알려진 문구이지만, 내게는 어떤 종교적 표식이라기보다 “평화의 형상”처럼 다가왔습니다. 영어 가사로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I’ve got peace like a river in my soul.


I’ve got—나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현재성을 강하게 줍니다. 평화를 목표로 삼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흐르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평화는 어쩌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저는 왜 하필 ‘강’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바다같이 광막하지도 않고, 산처럼 고정돼 있지도 않으며, 하늘처럼 닿을 수 없지도 않습니다. 강은 제 삶을 이루는 곳에 가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고, 흐르고, 때로는 마르고, 때로는 범람합니다. 강은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강 같은 평화’라는 말에서, 평화가 거룩하고 광범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 삶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상태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 문구가 종교적 색채를 띠기에 호기심이 더해졌습니다. 다른 전통에서는 평화를 어떻게 말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서구권에서 Peace는 계약과 조화를 통해 형성되는 안온한 상태를 가리키는 어원적 배경이 있고, 히브리어 ‘샬롬’은 깨어진 것이 회복되어 충만해지는 상태로 설명됩니다. 불교 전통에서는 고요하고 적정한 내면, 진정한 행복과 안정을 찾는 상태가 평화와 겹쳐집니다. 이슬람권의 인사말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에는 전쟁이 없다는 의미를 넘어, 안전과 조화, 관계의 우호성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평화는 대체로 “물건”이 아니라 상태, 관계, 혹은 회복으로 말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같은 ‘평화’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평화가 선물처럼 느껴질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거나 억압으로 경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평화조약을 두고도, 그 결과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명시적이고 구체적이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분명 유익합니다. 그래서 SDG 16 같은 목표는 필요합니다. 다만 나는 문득, 평화를 “목표”로만 붙드는 순간 놓치게 되는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평화는 불분명하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어느 누구나 늘 평화로웠던 시절이 과연 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어떤 시대의 평화가 다른 누군가의 공포였던 적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를 모르는 채로,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태를 이상향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일까요?

혹은 불안과 위협 속에서 “반대편”을 상상하며 평화를 부르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평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공평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처럼, 평화도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물처럼 어디엔가 흐르고는 있지만, 제가 서 있는 자리와 제 상태에 따라 제게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붙잡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삶에서 평화로운 시간은 어느 정도 이어져 왔는가.
그리고 그 평화는, 내가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 생겼는가, 아니면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된 흐름이었는가.


오늘로 이 시리즈는 여섯 번째 글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동안 제가 붙잡고 독자 여러분께도 건넸던 질문들에 대해, 제 나름의 답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① 여는 글

한 사람의 삶은 전 세계인의 삶과 얼마나 닿아있을까요?

https://brunch.co.kr/@karposinstitute/4



[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② 보다, 보여주다

한 사람의 삶이 세상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연결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도, 더 나빠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https://brunch.co.kr/@karposinstitute/5


[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③ 같은 생각 vs. 다른 생각

미운 얼굴을 하면, 미운 내가 됩니다. 고운 얼굴을 하면 고운 내가 됩니다. 현재의 글로벌 사회와 그 사회 속 사람들은 서로를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https://brunch.co.kr/@karposinstitute/6


[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④ 나쁜 말, 아닌 말?

내가 생각하는 것이(그것도 중요한 가치와 신념등), 과연 당신에게도—타인에게도—의미가 있을까요?

노벨평화상과 평화의 의미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과연, 이 상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노벨평화상, Quo Vadis....

https://brunch.co.kr/@karposinstitute/7


[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⑤ 나는? 너는?

과연 우리는 언제쯤 여유를 가지고 이 삶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고운 눈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얼마나—그리고 무엇이—여유로워져야 할까요?

https://brunch.co.kr/@karposinstitute/8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 본 계정의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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