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약속은 칼같이.

그 어떤 무엇보다 광고주와의 시간 약속이 제일이다

by 재완

어떤 직업이나 그렇겠지만 AE는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미팅 시간에 절대 늦으면 안되는 것은 당연하고, PT 제출 시간, 광고 심의 접수시간 등 1분만 늦어도 몇 십억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에 굉장히 민감하다. 한 케이블 채널 방송에서 경쟁PT 자료를 약속된 시간에서 2분 넘는 바람에 제출 못했다는 광고회사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분 이야기는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에피소드였다. 내 일이었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나 역시도 비슷한 사건들이 몇 번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데이터로 전송하지만, 내가 입사했던 초기만해도 신문광고도 출력본으로, TV광고도 테이프로 전달하곤 했다. 특히 TV 광고는 광화문에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로 직접 테이프를 보내야 했는데, 마감시간인 5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급송 퀵을 부르거나, 퀵 배정이 늦어지면 막내가 테이프를 들고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나도 몇 번 아슬아슬하게 택시를 타고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소재전송실은 16층에 있었는데, 항상 시간이 간당간당하게 달려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 1분 1초가 엄청나게 숨막히는 시간이었다.



광고주와 미팅 시간을 지키는 일은 당연하다. 보통 10분 전에 도착해서 미리 빔 프로젝터와 연결해서 셋팅을 하기 때문에 보고시간은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것이 좋고, 정말 부득이하게 엄청난 사건이 아닌 이상 미팅 시간에는 늦지 않는다. 그런 AE들의 생각과 직업병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건이 내 동기에게 일어났었다.



그 날은 세종시에 있는 광고주에게 보고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동기와, 팀장님, 그리고 CD(Creative Director)님이 함께 보고를 하러 가는 날이었고 미팅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던 세 사람은 택시를 타고 출발하게 됐다. 뒷 좌석에 팀장님과 CD님이 타고, 앞 자리엔 내 동기가 앉은 택시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교차로를 진입하다 다른 트럭과 박아버리고 말았다.


동기의 표현에 의하면, 뭔가 쿵 박고 튕겨서 쿵 또 박고 뒤에서 또 다다다다 박더니 멈췄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니 팀장님과 CD님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본인은 어디가 다쳤는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손을 들며 그녀를 불렀다.


혜..혜원아 … 광고주한테 늦는다고 전화해 …

죽음의 위기에서도 피어나는 그 몹쓸 직업병 … 너무 황당했지만 실제로 내 동기는 광고주에게 먼저 전화를 했고, 그 이후에 119에 전화를 걸었다. 본인도 다리가 부러져서 휠체어를 타고 두 달을 있었을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도 말이다. 병문안 가서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 병문안 물품으로 회사에서 노트북을 가져다달라고 할 정도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친구였으나 나는 정말 그 직업 정신을 배우고 싶지 않았다. 아, 배우고 싶은 건 딱 하나 있긴 했다. 무조건 차를 탈 때는 안전벨트를 꼭 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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