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 내인생 05. 제주에서 롤모델을 만나다

제주하면 핑크막걸리지

by 재완

술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제주도'이다. 언젠가는 제주도에서 꼭 살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내가 제주도에 빠지게 된 건 29살에서 30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갔던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 없고, 그저 옛날 어른들이 신혼여행으로 가던 곳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갔던 제주 여행에서 나는 제주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 어떤 동남아 바다색에 뒤지지 않는 옥빛 제주 바다를 처음 보고 얼마나 충격받았던지. 운전하는 친구를 불러 몇번이나 해변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봤다. 제주 바다가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나는 그간 그걸 몰랐구나 하며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주바다 만큼이나 나에게 충격을 준 건 바로 생유산균 제주 막걸리. 핑크색 라벨로 인해 핑크 막걸리로 더 유명한 이 새콤한 막걸리를 처음 만난 건 첫 제주여행에서 갔던 게스트하우스였다.



우리가 갔던 게스트하우스는 자유, 히피 그 자체인 곳이었다. 잠은 잘 수 있으면 자는 거고, 진짜 목적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는 그런 게스트하우스였다. 처음 본 제주 바다도 충격적인데 게스트하우스 문화까지 내게는 신선한 충격들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회비를 내고, 게스트하우스 거실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 날은 12월 31일이었고, 게스트하우스는 만실이었다. 거의 30여명 되는 사람들이 쭉 테이블에 둘러앉기 시작했고, 나와 내 친구의 앞에는 똑같이 여자친구끼리 온 두명의 여자분이 앉았다. 딱 봐도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보였기에 K-직장인은 바로 수저 셋팅을 하고 막걸리 잔까지 앞으로 셋팅했다.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우리를 보던 언니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기들 여기 처음 왔구나. 막걸리 이렇게 마시면 안되지~"


그리고는 우리 테이블에 막걸리 4병을 가져와 각자 한병씩 앞에 놓고서는 바로 뚜껑을 돌려 따 마시기 시작했다.

막걸리는 병막이지!!!


병맥도 아니고, 병막이라니. 영화에서 병맥주를 따서 벌컥 벌컥 마시는 건 봤어도 병 막걸리를 저렇게 벌컥 벌컥 마시는 건 처음 봤다. 병 째로 막걸리를 들고 마시는 언니를 보며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언니의 뒤로 후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멋있어 ...


나와 내 친구 역시 바로 언니를 따라 병막을 하기 시작했고, 유산균이 들어가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막걸리는 목에 걸리는 것도 없이 정말 술술 들어갔다. 처음 병막을 보여준 언니는 우리보다 8살이 더 많았는데 제주도에 이미 푹 빠진 상태였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제주도에 너무 빠져서 한달에 2번씩 주말마다 제주도를 오고 있고, 그렇게 된지 벌써 1년가까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직장을 정리하고 꼭 제주도로 내려올거라고 말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점점 더 눈 속의 하트가 커지고 있었다. 마침 나 역시 제주 바다를 보며 푹 빠져있었는데 그 첫 여행에서 언니같은 사람을 만나 병막도 배우다니. 이건 운명이야, 나도 꼭 언니를 롤모델 삼아서 저렇게 살아야지!!



사실 그 게스트하우스의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히피스러운 분위기도 한몫 했었다. 한창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일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고, 29살에서 30살이 되던 해의 마지막 12월 31일에 갔던 여행이라 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 언니처럼 한달에 한두번씩 제주도를 가는 사람이 되었다. 제주 뿐만아니라 핑크 막걸리에도 푹 빠졌는데, 생막걸리라는 특성 상 서울에 파는 데가 잘 없어서 한동안 제주 여행을 가면 꼭 가방에 두병씩 쟁여서 오곤 했다. 언니처럼 한달에 한두번씩 제주도를 가고, 조금이라도 길게 쉴 수 있어도 제주도에 가고, 핑크색 막걸리를 마시며 여러날을 제주도에서 보냈고, 회사를 그만두고 쉴 때는 친해진 게스트하우스의 일도 도와주고, 장기 숙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행을 다닌 지 1년 반이 지났을 때 나는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그 언니를 다시 만났다. 그때 한번 본 사이인데도, 다시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언니도 나를 바로 알아봐주어서 반갑게 우리는 인사를 했고, 언니는 정말로 자기가 말하던대로 제주도에서 살고 있었다. 그것도 8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서. 8살 연하의 남자와 함께 제주도에서 살게 되다니. 다시 한번 나는 역시 언니를 내 롤모델로 삼기를 정말 잘했다며 감탄했다. 언니가 가르쳐준 건 병막 뿐만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감탄하며 그날 나는 오랜만에 잔을 치우고 핑크 막걸리를 병막으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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