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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Dec 07. 2022

제주, 한잔 : 세화 오일장의 고추튀김과 김말이

세화는 튀김이다

언젠가 제주에서 살고, 내 가게를 한다면 세화에서 하고 싶다. 이것은 마치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내 안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다짐 중의 하나이다. 세화 바다는 아름답고, 제주시나 성산, 한라산 등 은근히 모든 곳이 가까워 교통이 편하며, 튀김이 맛있다.


내가 세화라는 동네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벨롱장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사라졌는데, 한동안 세화 해변에서는 오일장과 맞춰 벨롱장이라는 플리마켓이 열렸었다. 한참 게스트하우스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과 놀러다니는 여행자에게 벨롱장은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제주 각지에서 모여든 액세서리, 그릇, 가방, 옷 등 예쁜 소품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서는 관광객을 유혹한다. 그때만 해도 제주 내 소품샵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때라 '어머 이건 사야해'를 연발하며 한걸음 걷고 지갑 한번 열고, 한걸음 더 걷고 지갑을 또 열게 되는 마성의 공간이었다.


벨롱장에서 흥청망청 기분에 취해 돈을 쓰다보면 배가 고파지고 그제야 옆에 붙어있는 세화 오일장이 보인다. 세화 오일장은 관광객 대상의 먹거리 중심인 동문시장 같은 곳과는 달리 진짜 현지인을 위한 시장 느낌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 생물, 반찬, 현지인을 위한 옷과 신발 등을 파는 곳이라 특별히 여행자가 살 수 있는 건 없고 구경하는 재미만 쏠쏠한데, 그 안에서 여행자도 반드시 꼭 누려야하는 것이 있다.


세화 오일장 입구에 바로 위치한 맛나분식. 어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분식집이고 다른 메뉴들은 맛이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맛나 분식 앞에는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있는데, 바로 튀김 때문이다. 쉴새없이 사장님이 튀기고 있는 튀김. 다른 메뉴는 다 앉아서 주문하는데 튀김만 직접 줄을 서서 주문하고 받아와야 한다. 그 중에서도 고추튀김이 단연 인기라, 고추튀김을 먹기 위해선 타이밍을 잘 맞추거나 웨이팅을 해야한다. 튀김옷이 두꺼운 편인데도 밀가루 맛만 나는 게 아니라 간이 잘 배어있고, 속도 꽉 차있다. 바삭한 튀김에 상큼한 제주 핑크 막걸리는 정말 최고의 궁합이라 몇번이고 다시 튀김 줄을 서게 한다. 먹다가 끊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애초에 많이 사와야 한다. 주변에서 하이에나처럼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다시 줄을 서는 것도 꽤나 눈치가 보이는 일이라 반드시 처음부터 많이 사는 것을 추천한다.  


세화 오일장은 5일, 10일에만 열렸는데, 관광객이다보니 늘 그 일정을 맞출 수는 없었다. 오일장과 겹치지 않는 여행을 할 때면 대신 찾는 곳이 골목 안쪽에 위치한 튀김 전문점 ‘말이’ 였다. 노란색 지붕이 매력적인 말이는 이름답게 김말이가 주 메뉴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튀김 메뉴를 개발하신 듯 하지만 처음 말이를 찾았던 2014년부터 나는 쭉 김밥만한 사이즈의 대왕 김말이만 시킨다. 맛나식당과는 또다른 묵직한 김말이라 이 곳에서는 무조건 생맥주다. 당면과 고기가 가득한 김말이를 입이 찢어지게 가득 물고, 한참을 오물오물 씹다가 맥주로 넘기면 느끼함 하나 없이 시원하게 목이 씻겨져 내려간다.


역시, 세화는 튀김이야.


그래서 아마도 내가 세화에서 가게를 하게 된다면 튀김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튀김의 고수는 세화에 이미 너무나 확실히 자리잡고 있기에 나는 다른 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떤 것으로 승부를 걸지는 앞으로 안주를 100개쯤 더 먹어보고 결정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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