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행복 - 최인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관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면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자식의 학벌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잔고이다.
우리 사회가 간섭 사회로 향하게 된 이유는, 생활의 경계는 개인주의적인데 '자기'의 경계가 집단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단주의적 자기를 가지고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다 보니 간섭을 싫어하면서도 간섭을 하게 되는 덫에 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개인의 취향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되는 현상이 그런 예다.
간섭하기가 행복에 불리한 이유는 간섭이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서 '타인'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고 있다.
알 권리와 알 가치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이다.
행복 천재들의 또 하나의 비밀 병기다.
윈스턴 처칠 에너지 보존의 법칙
"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서 있지 않고, 누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앉아 있지 않는 것"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은 마음의 힘을 비축하는 행위다.
마음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대상이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때,
무언가를 배워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잘 해낼 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믿을 사람이 있다고 안심할 때,
그리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을 때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은 존중, 성장, 유능, 지지, 자유와 같은 내면의 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자기만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시그니처 질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이건, 사회건, 그것의 품격은 그가 던지는 질문의 품격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