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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Dec 17. 2024

운동이 힘든 게 아니라 헬스장까지 가는 게 제일 힘들다

내 안의 적, 나를 방해하는 나

알람이 울렸다. 눈은 떴지만, 몸은 침대와 한 몸이었다. 속삭이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그냥 쉬자. 어제 많이 했으니. PT도 내일로 미루자. 카톡으로 한 줄만 보내면 되잖아.'


그 꼬드김에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알았다. 이런 속삭임에 넘어간 날들마다 결론은 같았다. 결론은 바로 포기다. 무수히 반복된 실패 속에서 터득한 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카톡을 열었다가 닫고,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헬스장까지 걸었다. 스마트폰 시간을 확인하니, PT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랐다.


헬스장 앞 1층 롯데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 2명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잘못 봤겠지 했는데, 실 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트레이너 선생님 두 분이었다. 그리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1시간 뒤 수업을 하기 위해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예상보다 먼저 도착한 나를 발견해서 당황했을지도. 난 허리를 45도 정도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 중 한 분이 롯데리아 문을 열고 웃으며 말했다.


"일찍 오셨네요. 금방 아침 먹고 올라갈게요. 워밍업 하고 계세요."


러닝 머신 위에 올라 START 버튼을 눌렀다. 창밖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묵직한 발이 옮겨질 때마다 내 안에서 '하기 싫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STOP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또다시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쯤에서 멈춰도 괜찮아. 오늘은 몸이 안 좋다고 하고 도망가자. 여기까지만 하자.'

'후우~'


난 반대로 했다. 속도를 더 높였다. 5분쯤 지나자 녀석도 나를 포기했는지 조용해졌다. 그리고 조금씩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러닝 머신의 각도를 1에서 3으로 높였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감이 느껴졌다. 얼마 전 들었던 남자는 엉덩이지란 문장이 떠올랐다. 그 느낌을 부여잡고 계속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15분쯤 지나자 트레이너 선생님이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그는 무심히 러닝 머신 각도를 3에서 10까지 1분마다 올렸다. 나는 그의 손길이 각도 올림 버튼으로 향할 때마다 힐끔 보며 속으로 외쳤다. '과대평가 말고 과소평가 좀요.' 하지만 입 밖으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22분이 지나고 러닝 머신을 멈췄다. 바닥에 내 발이 닿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7번째 PT까지는 바닥으로 내려올 때 어지러운 증상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런 증상이 사라졌다. 약간 개운하달까.


"자, 그럼 이제 운동 시작해 볼까요? 가볍게 스쿼트 3세트부터 해보시죠."


운동이 힘든 게 아니었다. 진짜 힘든 건 나를 방해하는 나를 뿌리치고 헬스장으로 나오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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