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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Oct 29. 2022

호르몬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은 잘 먹이고 , 제시간에 재우며, 때에 맞춰 잘 입혀 다니는 게 기본 소양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의 화두는 '어제 oo가 통잠을 잤어!', 혹은 '어후, 애들이 깨서 너무 못 잤더니 피곤하네'나.

'어제 모 먹였어요', '오늘 저녁은 모 해 드실 거예요' 등. 모 아주 원초적인 대화들이 참 중요해진다.

매일 비슷하게 굴러가는 일상 가운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큰 기쁨일 것이나, 직장을 다니며 피로가 쌓이듯 육아 또한 육체/감정 노동으로만 느껴질 때가 사실은 매일의 일상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제는 모두 다 익히 다 아는 속담처럼, 정말 자잘하며 똑같은 루틴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그나마,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이 특히 부여되지 않을 때 육아하는 주 담당자의 피로는 누적되지 않을 수 없다. SNS에서 보이는 어떤 엄마들은 워킹맘이면서 때 되면 아이들을 좋은 곳 데려 다니며 옷도 깔맞춤으로 잘 입힌다. 입이 떡 벌어지게 정리된 집과 아이들의 장난감 사진에 영재 교육도 시키며, 아기들은 이유식도 그리 한 톨 안 남기고 잘 먹는다는 완벽한 엄마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주눅 든다. 휘들리지 아니하며 멘털 관리를 하며 내가 필요한 정보만 얻어가거나 그리운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는 용도로 잘 써보자 하지만, 하나는 밥도 안 먹고 짜증내고, 아빠 찾으면서 잠은 안 자고 울고 있는 다른 한 놈을 안고 있으면서 한 손으로 넘기는 그녀들의 포스팅은 더욱 빛난다.


난 항상 누누이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하는데, 젊음이 있었거나, 주변에 도움이 있었거나, 돈이 매우 넉넉했다면 난 셋째도 낳고 싶었겠지만, 아니기에 우리의 '공장'문은 닫았다. 어서 다 키워놓고 내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는 풀타임 육아에 프리랜스 일을 하며 에어비엔비도 하나 돌리는 '발악함'이 나에게 있었는데, 결국 지쳐 나가떨어졌다 했었다. 둘째 때도 초반에라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거 이거, 이번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더군다나 집에 7시에만 들어와 같이 저녁이라도 먹고 둘째를 수유하며 재울 때 첫째를 씻기기라도 할 수 있는 남편은 이직 후 10개월째- 야근이다. 주말 부부면 차라리 아예 마음을 접을 텐데, 매일 언제 오냐고 물어보기가 민망하지만, 안 물어볼 수도 없다. 들어오나 안 오나 나의 '업무'의 양이 현저히 줄어드는 건 아니다. 육아와 집안 살림을 건사하는 일이란 웬만한 브랜딩 보다도 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파트너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두 아이의 인생을 관여하고, 우리가 가족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되었다. 나의 파트너도 함께 만들어낸 우리의 아이들의 커감을 보여주고 싶었고, 아이들도 그 소소한 일상의 추억이 쌓여 마음을 채워간다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저녁시간은 아직도 악습이 남아있는 일 문화 때문에 지워지고 있었다.



'엄마, 나 정말 사실 육아 체질은 아닌 거 같아. 첫째도 겨우 키운 느낌이었는데 요새 너무 힘들어. 그냥 글렌 육아휴직 쓰고 나도 일 좀 알아볼까 봐. 얼마나 좋아, 애들 아빠랑 가까워지고, 젤 힘든 일인데 좀 돌아가며 해야지' 엄마는 그냥 째려본다. '머리 아프니까 말하지 말아라. 남자가 일을 해야지 원.' 당최 우리 엄마는 남자가 돈을 안 벌고 집에 있는다는 콘셉트 자체가 혐오스러운가 보다. 육아 휴직이란 말을 써서 그런가, 휴직, 이게 직장을 쉬고 논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육아 자체가 노는 거 1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육아 싫다, 육아 징글맞다라고만 생각하면 진짜로 힘들고 싫지 않겠나. 하는 일도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고, 의미를 찾으며 자아실현을 위해 한다면 건설적이다. 그렇게 육아도 나름 즐기기도 하고,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멋지게 할 수 있다. 


요새 항상 그 '야근'하는 남편 때문에 감정이 격앙돼있는 나에게 그냥 포기하란 지인의 권유가 있었다. 남편이 놀다 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이제 그만 다른 책임들이 내가 져야 된다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함께 평생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이유가 이 사람은 우리 부모같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두 할머니와 가사도우미 두 분이 나를 키울 동안 바쁘고 피곤한 엄마는 방문을 잠그고 주무셨다. 소풍이 다음날이라 했더니 침대 맡에 놓여있던 십만 원짜리 수표는 동네 어느 김밥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난 선생님이 남아 주신 김밥을 먹어야 했다. 무엇을 해도 나랑 하는 게 제일 좋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 남편을 무엇보다도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육아의 시간에 없는 게 매우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그를 탓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며 걱정이라 외치는 이 사회에서 정말로 육아 시 필요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시간'이 보장받지 못함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 다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불균형을 맞춰보려는 노력이다. 더 큰 그림을 보자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우리 아이들은 나와 같은 고민은 그만하고 더 자유하길 바람.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과 가정이 더 보장됨으로 더욱 나은 구성원이 되는 것. 지구인이 되는 것. 굳이 호르몬 때문에 내가 항상 불평하는듯한, 상기돼있는, 예민하고 민감한 엄마는 아니다. 사랑을 갈망함이고, 자유를 추구하며, 나름 저 멀리 멋진 그림을 그려보고는 있다. 생명이라는 우주를 잉태해서 배출해낸 경험을 통해 우리의 본능은 알게 모르게 깨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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