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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페로 Nov 05. 2020

아하! 뮤즈라는 이름의 중독  

강화길 ‘화이트 호스’ – 밥 딜런과 테일러 스위프트

     White horse!     


멋진 기사가 타는 말일까? 화이트 호스는 오로라 헌팅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도시 이름이며 위스키 상표다. 뉴욕에는 예술가들이 단골이었던 유명한 술집으로 화이트호스 태번이 있다.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다.


현실에서 순수한 의미의 백마는 극히 드물다. 흰색 털을 표현형으로 나타내는 유전자가 치사 인자로 작용하기에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근사한 무언가를 지칭할 때 하얀 말이 쓰인다. 여성들에게 백마 탄 왕자 만나기가 로또 1등 당첨되기보다 어려운 것처럼,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다.   


'화이트 호스'가 수록된 단편집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는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소설가가 집필을 핑계로 외딴 시골의 레지던스에 입주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드라큘라의 고성 같은 오래된 주택에서, 주인공은 기묘한 노래를 듣고 ‘화이트 호스’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된다. 써야 할 자기 소설은 제쳐놓고 화이트 호스의 정체를 좇는 작가의 이야기다.


작중 노래 두 곡에서 화이트 호스가 나온다. 밥 딜런의 ‘Absolutely Sweet Marie’,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White horse’.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유시인과 21세기 핫한 팝스타라니 기묘한 조합이다.


시대 외모 음악 인생 모두 상이한 두 사람


스위프트의 가사는 전 남친이 백마 타고 나타나도 필요없다는 내용이다. 쿨하고 명확하다.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깔끔하다.


밥 딜런의 곡은 영(어)알못, 시알못이 보기에 복잡하다. 1층짜리 눈으로 보자면, 270 kg이 넘는 몸무게로 유명했던 서커스 출연자인 Marie를 소재로 아웃사이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곡답게 위아래에 몇 개 층이 더 있어 보인다.


Well, six white horses that you did promise
    Were fin'lly delivered down to the penitentiary


가사 중 화이트 호스가 언급되는 부분이다. 서커스에 등장하는 말, 회전목마, 행복, 행운, 꿈...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White horse. 백색 죽음의 또다른 이름


좀 더 삐딱하게 볼 수도 있다. White horse는 코카인 또는 헤로인의 별명이기도 하다.


코카인은 중추신경 흥분제, 헤로인은 중추신경 억제제로 분류되는 마약이다. 작용기전은 다르지만 이들을 투여하면 도파민 활성, 뇌의 보상, 쾌락으로 이어진다. 코카인은 도파민을 제거하는 물질들의 활성을 방해하고 헤로인은 뇌의 도파민 억제 활동을 차단하여 도파민의 활성을 극대화한다.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중추신경계 호르몬인 도파민은 여러 작용을 하지만 특히 보상체계에 작용하여 행복감,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적당히 분비되면 즐겁고 행복하지만, 과다하게 분비되면 체내에서 도파민이 결합하는 수용체가 줄어든다. 인체는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같은 용량의 약물로는 보상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많이 투여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중독으로 가는 길이다.


밥 딜런은 한때 헤로인 중독자였다. 커트 코베인도 사망 당시 헤로인 과다 투여 상태였고, 호러소설의 황제 스티븐 킹은 오랫동안 코카인 중독과 싸웠다. 셜록 홈즈는 코카인을 투여하다가 왓슨에게 구박당하기도 했댜. 창조적 인간에게 마약은 뮤즈인 걸까?


약쟁이 홈즈


도파민과 창의력의 연관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파킨슨병 환자에 도파민 작용제를 투여해서 창의력 점수가 증가했다는 연구가 있다(물론 가족들에게 용인되는 수준의 비파괴적인 행동이었다). 창의적인 사람은 도파민이 주는 보상 효과를 얻기 위해 자극 추구 성향이 있으며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보고도 있다.


당연하지만 선후관계나 인과관계를 착각하면 곤란하다. 보상을 찾기 위한 중독이 역으로 없던 창의성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몸만 망가질 뿐.  


중독에 일가견이 있는(몸소 체험한)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창의적인 활동과 정신을 좀먹는 물질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우리 시대가 낳은 터무니없는 통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이나 마약을 즐길 권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창의적이었거나 소외되었거나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술을 마신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라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의 위험성이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시궁창에서 구역질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아 보인다.”


스티븐 킹은 소설 '미저리'의 주인공 작가에 약물 중독에 사로잡힌 자신을 투영했다고.


소설로 돌아와서, 여기서 ‘화이트 호스’가 마약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이 소설은 밥 딜런보다는 테일러 스위프트에 가깝다. 개인적 서사에 당당함, 주관, 솔직함을 세 스푼씩 가미해서 자기 색을 만드는 예쁜 주류 팝스타 같다.

(스위프트는 마약, 흡연, 문신은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으로 영리하다! 청소년들이 원픽으로 그를 꼽는다면 학부모들은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은 화이트 호스를 찾으면서 마약이 주는 효과와 비슷한 그 무엇을 기대하기는 했다. 아하! 하는 순간의 쾌감, 일종의 보상이다.


깨달음의 순간(aha moments)으로 일컫는 창조적 통찰은 뇌 보상 체계를 활성화해서 마약 투여 시와 비슷한 쾌감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2020년 발표되었다. 추리소설이나 퍼즐 애호가, 무명의 예술가가 다른 보상을 제쳐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행위에 몰두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창조적 통찰을 경험해도 뇌의 보상을 경험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이런 보상이 창작자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뮤즈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보상은 당장 안 주지만 정신적 보상에는 빠르게 열일한다.  


화이트 호스 주인공은 뇌가 주는 쾌감을 맛보기 위한 뮤즈로 화이트 호스,  미스터리를 이용했다. 그러고 보니 창의력이라곤 고양이랑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연구할 때만 사용하는  역시, 뇌의 보상을 위해 종종 화이트 호스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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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나의 뮤즈는 먹고 사는 데 1도 도움 안 되는 호기심과 탐구질이다. 소설을 읽다가 화이트 호스라는 떡밥을 덥석 물고, 몰랐던 화이트 호스를 발견할 때 화이트 호스를 느낀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무언가 계속 찾고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사람 모두, 뮤즈가 건네는 돈 안 되는 보상에 중독된 이들이다.





참고문헌  

Garcia-Ruiz PJ. Front Neurol. 2018; 9: 1041.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2004

Oh Y, et al. Neuroimage. 2020 Jul 1;214:116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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